“민폐도 이런 민폐가”…반기문 전 사무총장 ‘친서민 행보’ 빈축

기사승인 2017-01-12 22: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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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정진용, 이소연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친서민 행보’가 출발부터 삐걱댔다.

12일 입국한 반 전 총장은 ‘시민과의 만남’을 위해 열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오히려 반 전 총장을 환영하는 인파와 취재진으로 인해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반 전 총장이 입국하기 2시간여 전부터 인천국제공항 F 게이트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공항에는 반 전 총장의 모교인 충주고등학교 동문회와 ‘충주향우회’ 반 전 총장 지지모임 ‘반딧불이’ ‘화이팅반기문국민연대’ 등의 단체가 모여 그의 입국을 환영했다. 주변에는 ‘반기문 총장님 환영합니다’ ‘국격을 전 세계에 떨치신 반 총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등의 플래카드가 가득했다.

산악회 일행 120여명과 공항을 찾았다는 서정윤(63)씨는 “그 양반이 그래도 깨끗한 사람이다. 어수선한 시국에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사람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 않겠나”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반 전 총장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김수진(84)씨는 “충북 충주에서 버스 1대를 대절해 오전 6시에 출발했다”면서 “유엔 사무총장을 2번이나 연임한 실력이 있지 않겠나. 반 전 총장은 충주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중상모략이다. 그 사람은 깨끗하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오후 5시38분, 검은 양복에 붉은 넥타이 차림의 반 전 총장이 부인 유순택 여사와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은 현 시국에 대해 “갈가리 찢어진 나라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며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해 제 한 몸 불사를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의 연설은 ‘반기문’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외침에 여러 번 중단됐다.

이날 공항에서는 반 전 총장 지지자들과 대권 도전을 비판하는 이들 간의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20여분 간의 귀국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역행 고속직행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좁은 통로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려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압사당할 수 있다”는 경호원들이 제지에도 지지자들과 취재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몰린 인파 속에서 열차 표를 직접 구입하고, 편의점에 들러 물을 샀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시민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다.  

열차 탑승 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열차 칸은 취재진과 반 전 총장 일행으로 포화 상태를 이뤘다.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약 40여분간, 반 전 총장은 시민들과의 ‘스킨십’ 대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본인이 대권 후보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정당에 가입한 일이 없지만 정치를 모르는 것을 아니다”라며 “유엔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크고 작은 국제 문제들을 다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정당과 접촉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 섞인 눈으로 봤다”며 “100만명이 모였는데도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다. 성숙된 민주주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반기문 전 사무총장 ‘친서민 행보’ 빈축반 전 총장을 향한 지지자들의 환영은 서울역에서도 이어졌다. 고속철도에서 지상 역사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는 반 전 총장 일행과 지지자들로 인해 통행이 마비됐다. 시민들은 10분여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못했다. 캐리어를 끌고 온 이용객이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사용했다.

역사 내에서 만난 일부 시민은 반 전 총장의 친서민 행보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직장인 이모(23·여)씨는 “몰려든 사람들로 지하철을 이동하지 못 하고 지상역사 내에서 기다려야 했다”면서 “친서민 행보가 아니라 불편만 초래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소영(22·여)씨 역시 “사람이 몰리는 퇴근시간에 왜 굳이 서울역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인파를 뚫고 갈 길이 막막하다”고 비판했다. 

시민 김모(50)씨는 “일회성 이벤트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도 이용하지 못하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역사에서는 인파에 밀려 사다리에 올라가 있던 촬영 기자들과 지지자들이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애초 계획했던 국군장병라운지, 정보센터, 기념품 판매센터 방문은 취소됐다. 급기야 경찰 1개 중대 80여명이 서울역에 투입됐다. 반 전 총장은 환영인파를 뒤로 한 채, 오후 8시5분 준비된 차량을 타고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반 전 총장은 오는 13일 오전 9시에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사당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등록을 신고할 예정이다. 이어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고향 충청북도 음성과 충주를 방문하며 ‘대선 행보’에 돌입한다.

jjy4791@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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