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토기, 낡은 라디오와 함께한 50년

입력 2017-02-15 13: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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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경주=김희정 기자] 경주 민속공예촌에 자리한 신라요. 신라 도공의 혼과 열정을 담은 신라 토기가 태어나는 곳이다. 소박한 작업실에서 쉼 없이 전통물레를 돌리는 유효웅 작가가 이곳의 주인이다. 

토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신라요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방문객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기 작업과정을 관람할 수 있다. 평생을 신라 토기에 바친 장인의 작업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숙연함을 넘어 경외감까지 든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이 넘는 역사의 신라 토기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실용성으로 사랑받은 그릇이다.

◆ 50년 토기 장인의 이유 있는 고집
“경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토기를 시작한 겁니다.”

유 작가에게 토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이내 돌아온 대답이다. 그 한 마디에 신라 토기를 지켜온 장인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옹기를 하는 집안에 태어나 토기를 만들며 자랐고 토기와 함께 한 세월이 50여년을 훌쩍 넘었다. 민속공예촌에 머문 것만도 30년이 넘었다.

작업장 한쪽에는 그와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낡은 라디오가 있다. 흙이 잔뜩 묻어 마치 토기처럼 보이는 라디오에서는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신라요에는 라디오 외에도 오랜 옛말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것이 2개 더 있다. 수 천 년의 세월동안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운을 자아내는 신라 토기가 그 하나고, 50여 년 동안 전통물레를 고집하며 작업하는 그가 나머지 하나다. 셋은 꼭 닮았다,

그는 지금도 전통 물레로만 작업한다. 사용하는 도구들도 모두 그와 평생을 함께했다.

“옛날 것을 재현하려면 옛날식으로 해야지요. 또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하는 게 몸에 익어 편하기도 하고요. 세월에 부드럽게 마모돼 제 손에 꼭 맞는 도구들도 새 것보다 낫습니다.”

그는 선비가 일어나면 책을 읽듯이 흙을 만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작업장 한쪽 그의 자리에 앉아 낡은 라디오를 켜고 물레질을 하며 그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힘들지 않아요. 토기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니라 휴식이고 놀이입니다.”

1600년 전의 전통 문양을 토기에 새겨 넣는 그의 표정은 여유롭다. 어느새 토기에 그의 미소만큼 정겹고 편안한 문양이 새겨졌다.

이제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내는 일만 남았다. 1200도의 고온으로 소성하는 중에 소나무 재가 그릇에 붙어 특유의 자연유가 형성되며 회청색을 띄게 된다.

그는 “한창 작업할 때는 4박5일씩 소나무로 구웠다. 흙을 불에 녹이는 과정에서 연기가 토기를 코팅하며 미세한 구멍을 막아준다. 1600년 전 방식 그대로 굽는 기와를 지금도 사용하는 건 옛날 방식대로 만드는 게 그만큼 좋다는 증거”라고 했다.

◆ 일생 바쳐도 부족한 신라 토기 재현
유약 없이도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토기는 견고하고 가볍다. 보기에 매끈하고 아름다운 토기는 모두 생활자기로 사용할 수 있다. 신라요 뒤편으로 큰 규모의 토기 전시장이 있다. 그가 그동안 만들어온 토기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신라 토기, 낡은 라디오와 함께한 50년

전시장과 상품 진열대에 놓인 신라 토기를 비롯해 와당, 기와, 연화문, 디딤돌 등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보았던 토기들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토기로 만들어진 식기는 기능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숨을 쉬기 때문에 건강한 그릇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던 토기를 기념으로 구매하기 위해 외국인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출토된 토기 그대로 보고 만든다고 하지만, 신라요에서 탄생된 토기는 그만의 생명력과 정교한 아름다움이 더해진 토기다.

그는 “신라 토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만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일생이 부족하다”며 “가볍고 기능성이 뛰어난 신라 토기의 진가가 널리 알려져 생활자기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일 아침 6시에 나와 오후 6시까지 작업한다. 함께 일하던 제자들이 하나씩 독립해나가고 이제 홀로 남았지만 그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고 편안하다.

“신라 토기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평생 연구해왔습니다. 한때는 박물관에서 고미술품과 사랑에 빠졌고 학자들과의 교류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요. 여력이 될 때까지 변치 않고 신라 토기에 대해 고민하고 치열하게 작업하려 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 곳. 그가 있어 신라요는 오늘도 작업 중이다.

shi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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