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통증환자 울리는 의학회 새 장애평가기준

장애판정 받기 까다로워 진다?…의학회 왜 과거 기준 적용

기사승인 2017-02-20 08:46:45
- + 인쇄
개정판인데 과거 기준 적용?…장애판정 까다로워져 환자 피해 우려

[쿠키뉴스=송병기 기자] 지난해 10월 대한의학회가 개정 발간한 장애평가기준에 최신 진단 기준이 배제돼 관련 학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개정된 장애평가기준에 따르면 다수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장애인정 기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개정된 장애평가기준은 통증환자들이 법원에서 장애판정을 받는데 기준으로 인용될 가능성이 커 논란이 일고 있다.

◇개정된 장애평가기준 무엇 담겼나?

대한의학회는 지난해 10월 ‘장애평가기준과 활용’ 개정(판2판)을 발간했다. 이는 지난 2011년 9월 발간한 장애평가기준(해설과 사례연구) 출판 이후 두 번째로 개정한 것이다. 의학회는 개정판에 대해 관련 학회로부터 개정 작업에 참여할 위원을 추천받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해 근골격계 분야와 뇌신경계 분야에 대한 수정, 보완작업으로 개정판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발간사에는 “대한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은 현재 우리나라 여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조만간 법원에서 각종 손해배상소송과 관련된 장애평가기준으로 채택되리라 보며, 우리나라 모든 장애평가의 근간이 되리라 본다”고 서술돼 있다.

이번 개정판에 대해 의학회 측은 관련 학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경석 대한의학회 장애평가위원장은 발행사에서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은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에 따라 2007년부터 대한의학 회가 주관하여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새로운 장애평가기준으로 개발하였다. 이 기준은 2011년에 출판되었으나 아쉽게도 일부 근골격계 장애평가기준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 되어 널리 이용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의학회 주관으로 2013년에 대한정형외과학회,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재활의학회 등과 공동으로 개정 작업을 진행했으며, 2014년 12월 상지와 하지 분야 개정안을 합의 아래 마련했지만 척추 분야의 합의가 늦어져 2016년 6월에야 최종 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이 이경석 위원장의 설명이다.

또한 발행사에서 이 위원장은 “개정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뇌신경계 장애평가기준에 대해서도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재활의학회 등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개정판인데 과거 기준을 적용한 이유는?

문제는 개정판의 진단기준이 미국의학협회(AMA)의 장애평가기준 5판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5판(AMA5판)에 장애인정 기준 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AMA6판이라는 새로운 진단기준이 제시됐다.

그럼에도 대한의학회는 지난해 10월 발간한 장애평가기준에는 AMA5판을 근거로 했다. 이에 대해 대한통증의학회는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조대현 대한통증의학회장(대전성모병원 통증의학과 교수)은 “이번 개정안은 예전의 진단기준을 근거로해 작성된 것이다. 최신 진단기준이 있음에도 이를 제외한 것은 환자들을 고려했을 때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통증학회 측은 “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 개정판(2판)은 AMA 5판을 토대로 하고 있고, 최신판인 6판의 내용은 배재됐다.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이다. 조만간 공문 형식의 의견서를 대한의학회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통증장애 범위를 협소하게 했고, 판정기준도 최근 의학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증장애 범위의 경우 개정판에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만을 장애평가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AMA6판에는 장애평가가 필요한 통증질환을 크게 4가지 범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RPS를 제외하고 최고 장애율이 3%에 달하는 등 통증장애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개정판은 CRPS에 의한 장애만 인정하고 동일부위의 다른 장애는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진단기준도 문제라는 의견이다. 장애를 입은 환자들이 보험사 등과 법원에서 다툼이 있을 때 장애판정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근거다. 이와 관련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개정판인 법원이 장애 판정과 관련해 준용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보험회사와의 소송이 있을 경우 장애 인정 판단과 관련 환자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아 장애가 있음에도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진단기준과 관련 대한의학회의 경우 “치료목적으로 사용되는 국제통증연구학회(IASP) 진단기준과 달리 장애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징후만을 사용하도록 한다. CRPS에 대한 장애평가는 표와 같이 객관적 진단 기준 11개 중 8개 이상이 동시에 충족돼야만 평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표 참조)

[단독] 통증환자 울리는 의학회 새 장애평가기준
이에 대해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개정판 진단기준은 AMA5판의 CRPS 인정기준 11개 중 8개 이상의 기준을 준용했다. 이 기준은 문제가 많아 미국에서도 신판 개정시 변경된 기준이다. 11개 진단기준 중 8개에 해당하는 CRPS환자는 매우 소수고, 대다수 CRPS 환자가 배제돼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한 장애진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애율산정에 있어서도 의학회 기준은 11개 중 8개 이상의 객관적 징후를 보이는 경우 상지장애진단기준에 의해 평가하는 것으로 서술돼 있다. 반면 미국 AMA6판에는 CRPS가 진단기준을 충족시키는지 확인하고, 객관징후 점수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교수는 “만성통증환자들 특히 CRPS 환자들은 손과 발 절단 장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지 및 하지의 정상적 사용이 불가하다. 장애인정 기준이 절단이나 신경손상 등만 해당한다면, 기능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CRPS환자들이 배제되는 모순이 생긴다. CRPS환자들의 장애인정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개정된 기준이 오히려 환자들 울린다?

지난 2013년 6월부터 시작돼 3년여의 논의 끝에 나온 장애평가기준 개정판에 대해 관련 학회와 환자단체 등은 오히려 장애등급 판정을 더 어렵게 해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 환우회도 이번 대한의학회의 장애평가기준 개정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터 모스코비츠 미국 CRPS환우회 이사장(전 조지워싱턴대학 정형외과학 교수)은 쿠키뉴스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개정된 지침은 실행 불가능하며 심각하게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피터 이사장은 개정판에 서술된 정신과 진단은 (미국에서도)적절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선 꼽았다. 이어 그는 “CRPS 환자가 장애나 통증이 있음에도 통증이 더 악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면서 “CRPS 환자의 경우 회복이 됐다가도 영구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피터 이사장은 “미국의학회도 (과거)엄격한 지침을 만들었지만, 윤리적으로 부적절하고 실용적이지 못해 결국 최신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한통증의학회도 “CRPS 장애진단의 객관적 가이드라인 제시를 위해 학회차원의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번 장애평가기준 개정판(2판)의 통증장애 진단기준의 문제를 우려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songb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