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9개월 만에 멈춘 ‘이재용의 삼성’…이룬 것과 남은 것은

기사승인 2017-02-20 21: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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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9개월 만에 멈춘 ‘이재용의 삼성’…이룬 것과 남은 것은

[쿠키뉴스=김정우 기자]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수사를 받으면서 지난 29개월여 동안 추진해온 삼성의 변화 시도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에 입각한 사업 재편과 쇄신 작업에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7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뇌물공여·횡령 혐의 등으로 신청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발부됨에 따라 구치소에 수감, 18일과 19일 주말 양일간 연달아 조사를 받았다. 처음으로 포승줄에 묶인 채 소환된 이 부회장의 모습이 공개됐고 삼성의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이 부회장이 역대 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수사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삼성에 최악의 상황으로 꼽힌다.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은퇴를 선언해 위기를 면했다.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차명계좌 의혹 등으로 2008년 그룹 수뇌부인 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 전신)을 해체하고 2년여 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사법부에 의해 물리적으로 경영 현장으로부터 격리된 이 부회장은 향후 재판에서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이끌어내기 전까지 전략적인 위치를 취할 수 없고 경영 의사결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추진 또는 구상해온 모든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정경유착의 창구로 지적되는 대내외 구조를 배제하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내걸었고 올해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이 전경련 활동 중단을 공식화 했으며 내부에서는 특검 수사로 제때 진행되지 못한 임원인사·조직개편 재개에 맞춰 미래전략실 해체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미래전략실 해체 등은 이번 사태로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였지만 삼성이 이 부회장 체제로 전환된 이후 축소 또는 해체 가능성이 줄곧 언급되던 사안이다. 이 부회장의 그간 행보에서 사업 중심의 실용적 조직을 추구하는 성향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20145월 부친인 이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삼성은 안팎에서 이 부회장 체제로 쉴 새 없이 재편돼 왔다. ()주력 계열사 정리를 통한 선택과 집중’, 능력 중심의 조직 쇄신 등이 골자로 오너인 이 부회장의 의지에 따라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삼성은 201411월 삼성종합화학·탈레스·테크윈·토탈 등 방산·화학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약 2조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듬해에는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넘겼다. 아울러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데 이어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키는 등 사업 재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삼성SDS는 향후 사업 규모가 커진 물류 부문을 분사할 계획도 세웠다.

2015년도 조직개편에서는 독립적으로 기능해온 MSC, 글로벌B2B센터를 기능별로 나눠 사업조직 내부로 편입시키고 이전까지 2개로 운영되던 미국 판매법인도 통합해 대외 업무 효율성을 제고했다. 지난해에는 서울 서초동 사옥에 모여 있던 삼성전자 사업 부서를 수원사업장으로 이동시키는 등 업무 효율 제고를 꾀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 체제 아래 삼성전자는 벤처 투자 등을 늘려 효율적 기술 확보 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에 적용된 MST 기술 개발 업체 루프페이, IoT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 인공지능(AI) 기술 보유 업체 비브랩스 인수와 로보틱스 업체 비카리우스 등에 대한 투자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 인수를 추진 중이다.

내부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은 젊은 인재가 적극 기용됐다. 특히 2016년도 사장단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갤럭시시리즈 개발의 주역으로 꼽히는 고동진 당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무섭사업부를 맡겼으며 한인규 호텔신라 부사장과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도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켜 면세, 바이오 사업을 지휘하도록 했다. 이들은 모두 1960년대 이후 태생으로 세대교체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5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개채용부터는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직무적합성평가를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조직문화 혁신 전략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삼성전자에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직급체계를 도입하고자 계획했다. 역시 실질적인 능력 중심의 조직을 구현하겠다는 취지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모두 줄였다. 2012년부터 늘려왔던 부동산 투자를 멈추고 불필요해진 건물들을 매각했으며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첼시와의 후원계약을 끝내는 등 고비용 마케팅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소유의 전용기와 전용헬기들을 대한항공 자회사에 매각하고 해외 업무에 민간 여객기를 주로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경영 위기 상황에도 전면에 나섰다. 2015메르스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했다며 국민 앞에 사과문을 발표했고, 지난해 등기이사로 임명된 이후에는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7’ 발화 사태 수습을 위해 전면 리콜과 단종까지 결정해 신속하게 위기에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으로 남은 삼성의 장기 과제로는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통한 지배구조 전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사업에서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시설투자, 전장·바이오 등 신규 성장사업 육성을 위한 전략 수립, 글로벌 경쟁에 대비한 유연하고 젊은 조직문화 정착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속됐다고 삼성의 사업이 당장 멈추지는 않겠지만 기업의 오너가 내릴 수 있는 장기적이면서도 단호한 결정을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이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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