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안해서합니다] ‘양지로 나온 性문화’…성인용품점 탐방기

기사승인 2017-02-25 0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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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영업을 시작한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다. 붉은 셀로판지로 창문을 가린 탓에 내부를 짐작할 수 없다. 나이 든 남성들만 방문한다. 선뜻 들어갈 수 없다. 음침하고 퇴폐적이다.

‘성인용품점’에 대한 대다수 시민의 고정관념입니다. 성인용품 또한 드러내놓고 살 수 없는 물건으로 여겨져 왔죠. 그러나 지난 2015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개점한 ‘플레져랩’을 선두로 전국 각지에 양지 문화를 지향하는  ‘어덜트 토이(adult toy)샵’이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사업 관련 외국계 기업들의 국내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플레져랩은 국내 최초 여성을 위한 성인용품점입니다. 넓은 창과 고급스러운 외관, 감각적인 내부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습니다. 카페로 오해하고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분점이 생겼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죠.

‘여성을 위한 어덜트 토이샵’이란 어떤 곳일까요? 설명만으로는 와 닿지 않습니다. 동료 기자들 역시 쉽게 짐작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궁금한 건 취재한다라는 과업을 짊어지고 직접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플레져랩 방문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어플)에서 해당 건물이 검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인용품을 판다는 이유로 포털사이트 검색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도 어플에 상호를 등록할 수도 없고요. 결국 플레져랩과 직접 통화해 주소를 받았습니다. 방문 계획이 있다면 미리 주소를 알아둬야 합니다.

‘고급스러워 봤자 성인용품점 아닌가?’

기자의 생각은 단번에 무너졌습니다. 카페나 분위기 좋은 펍(pub영국식 전통 맥줏집)을 연상케 하는 외양입니다. 양지로 나왔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네요. 본격적으로 탐방해볼까요?

판매되는 제품 중 80%는 여성용 자위 기구의 일종인 바이브레이터(진동기기)입니다. 두께와 모양에 따라 삽입형과 비삽입형으로 나뉩니다. 손님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두께입니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에 나오는 것처럼 두껍거나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저마다 맞는 크기의 제품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만약 종류가 많아 고르기 어렵다면, 초보자가 사용하기 무난한 제품을 추천받는 것도 좋겠죠?

여성을 위한 성인용품을 판매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플레져랩이지만 남성 전용제품도 있습니다. 고리 모양의 바이브레이터인데요. 해당 제품은 발기 시간을 지속시켜준다고 합니다. 다만 성기에 착용 시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여성도 쓸 수 있다는 것인데요. 여성이 사용할 때는 고리 부분을 손으로 잡고 비삽입형 바이브레이터로 쓰면 됩니다. 

매니저 이은영(29·여)씨는 처음 오픈했을 당시만 해도 여성 방문객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최근 들어 남성 고객의 비율이 증가했다”며 방문객 중 약 40%가 남성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브레이터를 제외한 남성 전용 제품의 경우 삽입이 가능한데요. 궁금한 마음에 기자도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았습니다. 걱정과 달리 실리콘 재질이라 무척 부드러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매장을 방문해 체험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인상 깊었던 것 물건 중 하나는 구멍이 뚫려있는 엽서입니다. 사람의 손가락을 빈 곳에 대고 여성의 엉덩이처럼 보이게 하면 되는데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제품이 확실합니다.

기자가 매장을 둘러보던 약 한 시간 동안 여섯 명의 손님이 오갔습니다. 이십 대 여성부터 중년 남성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저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죠. 성에 대해 쉬쉬하던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성문화에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 아닐까요?

플래져랩 곽유라(29·여) 대표는 “플레져랩은 건강한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지, 성인용품 판매에 국한된 회사는 아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어덜트 토이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을 느낀다. 이 변화의 중심에 여성이 존재한다”며 “여성이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동을 숨기지 않게 됐다. 놀라운 변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친구와 함께 매장을 방문한 노모(23·여)씨는 “유튜브(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서 예술가들이 플레져랩을 방문한 영상을 통해 (플레져랩의 존재를) 알게 됐다”며 “보기 좋았다. 이런 곳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늘은 구경만 하다 갈 것이나, 다시 방문해 물건을 사게 될 것 같다”며 “성인용품 말고도 다양한 걸 판매하고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습니다.

[아무도안해서합니다] ‘양지로 나온 性문화’…성인용품점 탐방기

기기를 사게 되면 직원은 장갑을 끼고 기기의 오작동률을 점검합니다. 여성의 성기가 설명된 그림과 기기 사용 설명서가 적힌 종이도 동봉하죠. 기자는 무난한 컵홀더를 구매했기 때문에 해당 작업은 생략했습니다. 

상품을 결제하며 현 성인용품 시장의 흐름과 관련해 물었습니다. 곽 대표는 “개인의 취향에 맞춘 제품이 대세”라며 “핸드폰에 블루투스로 기기를 연동해 사용자가 원하는 진동 패턴을 그리거나, 음악에 맞춰 기기가 강약을 조절하는 등의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가상현실(VR)을 접목한 제품이 많이 출시될 것”이라며 “다만 현재는 기술적으로 미흡한 수준이다. 나는 앞을 보고 있는데 기계는 옆을 보는 등의 오류가 발생하더라”고 덧붙였습니다. 동행한 기자는 “VR을 이용해서까지 자기 위로를 하고 싶진 않다”며 질색했지만요.

성인용품은 그동안 많은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변태들의 전유물 혹은 문란한 성생활의 도구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편견들이 깨지고 있습니다. 20~30대 젊은이부터 보수적인 70대 노년층까지 플레져랩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과 관련해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성문화에 대해 고찰,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성문화를 위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aga4458@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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