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으로] 유럽여행기 펴낸 휠체어 여행가 홍서윤 씨

기사승인 2017-03-17 09: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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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수년째 사랑으로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휠체어 건축가 흰돌하우징 대표 박철용 씨에 이어 홀로 한 달간 유럽 7개국 25개 도시를 누비고 유럽여행기 펴낸 휠체어 여행가 홍서윤 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병원 밖을 나서는 순간 다시 태어났다

“병원 밖을 나가는 순간에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갓 태어난 것처럼 뒤집기부터 걸음마, 젓가락질과 글씨쓰기까지 다 다시 배워야 하니까요. 차를 타는 법, 운전하는 법, 여행 가는 법, 연애하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도 새롭게 배워야 할 거예요. 그런데 어렸을 때 한 번 배워봤던 일이기 때문에 두 번째는 금방 노하우가 생길 거예요.”

홍서윤 씨는 숱한 편견을 뚫고 새로운 걸음마를 걸어야했다. “10살 때 수영장에서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내렸어요. 몇 년 후 MRI 검사를 통해서 바이러스성 척수염 진단을 받게 되었죠. 목 아래가 마비된 적도 있었지만 많이 나아서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4대 1 경쟁 뚫고 KBS 장애인 앵커 합격

2013년에는 104대 1의 경쟁을 뚫고 KBS 장애인 앵커 공채에 합격했다. 12시 생활 뉴스를 진행했다. 서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던 중 뜻밖에 입사하게 된 첫 직장이었다. 2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그녀는 또 다른 일에 뛰어들었다.

“저에게 직업의 의미는 좀 다른 것 같아요. 9시부터 6시까지 전일 근무도 해봤고, 프리랜서도 해봤는데 가장 힘든 것은 몸이 망가지는 거였어요. 잠자는 시간 빼고 종일 앉아서 일하는 거잖아요. 초과 근무시간 이런 것까지 다 해내기엔 체력이 안 따라주더라고요. 더욱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누워서 쉬어줘야 하는데 회사엔 그럴 공간이 없는 거죠.”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일한다. 그러다 욕창에 걸리거나 신우신염에 걸리고 과로로 쓰러지는 장애인들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그러려니 했다.

평소관심 있던 ‘여행’에 대한 생각 발전시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설립

서윤 씨는 2년간의 장애인 앵커를 끝내고 취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인터넷망이 발달돼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용 평소관심 있던 ‘관광약자를 위한 여행’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그와 연장선상에서 라디오방송 리포터로 장애인 여행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어디든 인터넷이 가능하고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곳이면 그곳이 저의 사무실이 되곤 해요. 트렌디한 분들과 협업하는 일이 많은데 인터넷 메신저 하나면 회의도 가능하고 업무가 뚝딱뚝딱 진행되죠. 물론 만나서 차 마시며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요. 시간 활용이 유연해서 좋아요. 꼭 사무실에 붙어 있어야만 업무가 잘 진행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한 달간 유럽 7개국 25개 도시를 누볐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직접 자동차를 몰고 찾아가곤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종종 해외여행도 갔었다. 그러다 문득 혼자서도 갈 수 있을까?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한 달간 유럽 7개국 25개 도시를 누볐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았을 때의 감격이라니. 나 홀로 휠체어를 타고 트렁크를 밀고 다녀온 여행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장기가 되어 주었다.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장애인 여행 팁이 많았다.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라는 책을 펴냈다.

장애인 시각에서 찾아낸 유럽 곳곳의 여행 정보를 나누고 싶었다. “제가 탐구정신이 좀 있어요. 스위스여행을 다녀온 다음 의문이 생기는 거예요. 어째서 스위스는 알프스산 꼭대기 까지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관광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을까. 정보를 찾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걸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쳤지요.” 아프기 전에는 가족들과 봄에는 두릅을 따러 가고, 여름엔 물놀이를 하고, 가을엔 밤송이를 따러 갔었다. 그런데 보행이 힘들어지자 제약이 많았다. 유럽여행은 그간 나의 여행은 왜 그렇게 힘들었었나, 왜 그렇게 국내여행을 할 때마다 피곤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그녀는 장애인 관광에 대한 인프라를 향한 새로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함일 뿐이지 비정상이 아니다

“저는 평생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함일 뿐이지 비정상이 아니다’라는 은사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어요.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처럼, TV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우연히 스쳐지나갔던 사람처럼, 저도 남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인거예요. 그냥 조금 불편한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희 은사님의 말씀이 힘이 되었으면 해요.”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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