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보통사람’ 2017년 현실이 영화 속 1987년에 미친 영향

‘보통사람’ 2017년 현실이 영화 속 1987년에 미친 영향

기사승인 2017-03-22 09: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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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보통사람’ 2017년 현실이 영화 속 1987년에 미친 영향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별것 아니라 믿었던 순간의 선택이 큰 비극을 초래한다. 이미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돼 온 주제 중 하나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하게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미는지 등 비밀을 풀어가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주체가 한명의 개인인지, 특정 집단인지, 우연인지, 아니면 나 자신인지에 따라 영화의 장르가 달라진다.

영화 ‘보통사람’의 경우는 1987년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범인이다.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는 평범한 인물이다. 국가에 충성하며 수많은 범인을 잡아온 베테랑 형사의 삶에 큰 어려움이나 대단한 행운은 없다. 다만 아들의 아픈 다리를 고쳐주고 말 못하는 아내(라미란)와 2층 양옥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 정도가 있다.

성진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발바리 사건의 범인을 어렵게 잡았다. 그 과정에서 잘못 검거한 용의자 태성(조달환)을 풀어주려던 성진은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때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이 성진을 ‘남산’이라 불리는 대공분실로 부른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범 사건을 맡아보겠냐고 제안한다. 얼떨결에 사건을 맡게 된 성진은 수사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다. 막역한 사이인 자유일보 기자 재진(김상호)도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경고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보통사람’이라고 믿는다. 성진에게는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잡는 것이, 재진에게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규남에게는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보통사람이 사는 방식이다. 따로 떨어져서 각자의 세계를 돌아가게 했던 이들의 방식이 연쇄살인 사건으로 인해 서로 부딪히게 된다. 규남에 의해 성진은 이전과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재진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엇갈린 길을 걷는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배경을 바꿔야 했을 정도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까.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며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스릴러부터 정치의 더러운 뒷면을 보여주는 사회극,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시대극, 과한 음악으로 억지 감동을 자아내는 신파까지 그 면면도 다양하다. 영화 ‘더킹’부터 ‘소수의견’, ‘국제시장’ 등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 수사를 받는 현 시점에서 보는 ‘보통사람’은 1년 전에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영화 속 캐릭터였던 규남은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를 모델로 한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수개월간 이어진 탄핵 정국의 영향이다. 현실이 영화의 맥락을 바꾼 것이다. 또 영화 속 배경인 30년 전이 그리 먼 과거로 느껴지지 않는 씁쓸함을 관객에게 남기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는 경찰서를 지키는 한 마리의 개다. 이 개는 성진을 못 알아보고 거칠게 짖는 첫 장면부터 여러 번 등장할 때마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킨다. 반면 성진은 매번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개를 마주한다. 평범한 경찰서 개의 시선을 쫓다보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영화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오는 23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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