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트레스 비용의 경제학

기사승인 2017-03-26 05:00:00
- + 인쇄

[기자수첩] 스트레스 비용의 경제학

[쿠키뉴스=구현화] 최근 인터넷상에 이른바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욕설을 섞은 자조적인 표현인 이 신조어는 일상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일어난 갑작스러운 소비를 의미하는 말이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생각지도 못하게 소소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편의를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경우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유행어인 충동구매나 지름신의 다른 말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외부의 압력을 강조한 말이라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지난 6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8명은 ‘홧김에 스트레스로 돈을 낭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안 사도 되는 제품을 굳이 구매했던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퇴근길에 들러 사는 립스틱이나 섀도 등 아기자기한 화장품, 전자상가에서 하나 둘씩 구입하는 피규어, 귀여운 전자 액세서리 상품, 매콤한 치킨이나 떡볶이, 마카롱이나 치즈케익 같은 단 음식 들이 주로 대상이 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할 때는 택시를 타고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주로 학교를 마친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잠시 발생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소소하다. 물론 비용이 커질 때도 있다. 비싼 가방을 지른다든지 차를 몰고 훌쩍 여행을 떠난다든지, 먼 곳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사실 젊은 층은 스트레스 세대다. 미래도 캄캄한데 현실은 힘겹다. 사회는 공정하지 않고, 취업은 어렵고, 겨우 취업이 돼도 야근과 온갖 비합리적인 압박에 시달린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내집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스트레스 받고 있는 자신에게는 저축 등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도 당장의 이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게 중요해진다.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기라는 의미의 욜로(YOLO)가 이 시대의 정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살고 가는 것 즐기며 살자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더욱 이 같은 삶의 방식은 지지되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런 수요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눈길을 사로잡는 귀여운 피규어, 장난감 같은 화장품까지 다양한 상품들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나 작은 비용으로도 스트레스를 풀려는 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저렴하고도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젊은 층을 위로하려는 것이리라. 소비가 마음을 위로하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용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산업적으로는 소비자의 복리를 높여주는 다양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창출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청년들을 위한 사소한 자기만족이 유통업계의 구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kuh@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