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도보순례’ ‘천막농성’…세월호 인양까지 고단했던 1073일

기사승인 2017-03-24 13: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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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이소연 기자] 세월호가 23일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가족들은 지난 2014년부터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 ‘도보순례’ ‘천막농성’ 등 지난한 싸움을 지속해왔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드디어! 고대하던 세월호가 인양됐다”며 “많은 아쉬움은 일단 잠시 접어두고 고생하고 수고한 모든 이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은 참사 발생 100일을 앞두고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여·야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과 관련, 극한 대치를 벌였다. 151일간 단 한 건의 법안도 발의되지 못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유민아빠’ 김영오씨 등 유가족 15명은 2014년 7월14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과 가수 김장훈·이승환, 시민 2만5000여명이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 김씨는 농성 시작 48일째 날,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단식 농성이 종료된 후, 광장은 분향소·전시실 등의 추모공간으로 개편됐다.  

같은 해 여름, 6㎏ 무게의 십자가를 지고 900㎞ 순례에 나섰던 유가족도 있었다. 고(故)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이아름씨,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는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출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걷는 고된 순례를 진행했다. 이후 다시 전남과 전북을 거쳐 대전까지 순례를 이어갔다. 38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이들은 대전에서 당시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이호진씨와 김씨가 순례 내내 짊어졌던 십자가는 교황에게 전달됐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단원고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도보 행진했다.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가족들은 거리에서 350만1266명의 시민으로부터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같은 해 11월7일이 돼서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식’ ‘도보순례’ ‘천막농성’…세월호 인양까지 고단했던 1073일특별법이 제정됐으나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은 이어졌다. 지난 2015년 4월16일, 세월호 1주기 집회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됐다. 광화문광장을 겹겹이 둘러싼 차벽으로 인해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은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와 최루액을 발사했다. 유가족을 포함 시민 100명이 연행됐다.

유가족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기간 연장을 위한 단식도 진행했다. 진상규명을 위해 출범한 특조위의 활동도 순탄치 못했다. 특조위 측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 관련 조사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특조위에 활동 종료를 통보했다. 특조위원과 유가족은 활동 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였으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특조위의 활동이 모두 종료된 후, 일부 특조위원과 유가족은 ‘4.16 국민조사위원회(국민조사위)’를 발족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 100여 명 구성된 국민조사위는 지난 1월부터 진상규명 촉구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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