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경기] 치열한 승부세계에서 피어난 웃음꽃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기념 명경기 5선-⑤반전

기사승인 2017-04-21 17: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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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가 더 위대해져서 돌아온다.

지난달 26일 스타크래프트 20주년을 기념한 블리자드 행사 ‘I <3 StarCraft’에서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는 “과거와 현대가 만나게 됐다”면서 리마스터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이번 리마스터링에서는 4K UHD 해상도 지원을 골자로 고음질 오리지널 오디오 추가, 한국어 지원, 배틀넷 인터페이스 개선 등 지금껏 블리자드가 쌓아온 기술집약적인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길 것으로 기대된다.

브루드워 하면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e스포츠의 아버지로 일컫는 신주영과 이기석, 그리고 황제로 군림한 임요환까지.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기원이라 할 만큼 큰 인기를 구가했다. ‘나 만큼 미쳐봐’라 자신한 한 프로게이머의 열정은 국제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e스포츠의 기초가 됐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링을 기념해 브루드워 명경기를 다시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쿠키뉴스=이다니엘, 윤민섭 기자] 

▲광전사가 띄운 회심의 드랍십… 해처리의 운명은?

CJ엔투스 한솥밥을 먹던 변형태와 마재윤(현재 영구퇴출)이 개인전 4강에서 만났다.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3 4강에서 격돌한 둘은 접전 끝에 2대2 동률을 이루며 승부를 5세트로 미뤘다.

변형태는 ‘버서커’로 비유될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플레이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여러 방향에서 타격하는 특유의 플레이방식으로 마재윤의 혼을 빼놓았다. 김태형 해설위원은 “이 두 선수 사람인가”라며 선수들의 집중력에 엄지를 치켜세웠고, 엄재경 해설은 “옵저버가 제일 힘들겠다”면서 동시다발적인 전투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일찍이 디파일러를 갖춘 마재윤이었지만 공중과 지상으로 밀려오는 변형태의 물결에 조금씩 피해가 누적됐다. 분위기를 바꾸고자 마재윤이 꾀를 썼다. 스타팅지역에 몰래 멀티를 시도한 것. 이를 모르던 변형태는 상대 본진쪽으로 병력을 휘몰아쳤고, 조금씩이 힘이 빠져갔다.

양쪽 모두 지쳐갈 무렵, 마재윤의 남은 희망은 몰래 확장기지 하나뿐이었다. 이때 변형태의 드랍십 2기가 마재윤의 확장기지쪽으로 날아갔다. 해당 멀티를 타격하면 변형태의 승리가 유력했던 터라 해설위원들도 긴장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드랍십에서 내린 건 SCV였다. 변형태는 본진과 양 멀티지역의 미네랄이 고갈되자 SCV를 확장기지로 옮겨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김 해설은 “뭔가 이게. 이거는 제가 볼 때 역대 최고의 반전이다. SCV가 웬 말인가”라고 한탄한다.

이후 변형태는 10분 동안 공격을 더 휘몰아쳤으나 안타깝게도 마재윤의 수비를 뚫지 못하고 GG를 선언했다.

▲ 넥서스 지을 돈 없나요… 있어요, 399!

지난 2006년 온게임넷(現 OGN) 슈퍼루키 토너먼트 16강 B조 2경기로 펼쳐진 김인기와 이재황의 대결은 반전의 대명사다.

두 선수는 ‘신 개척시대’에서 대회 8강 진출권을 놓고 맞붙었다. 김인기는 다른 멀티를 확보하지 않고 초반 물량에 집중하는 본진 3게이트 전략을 택했다. 초반부터 다수의 질럿으로 상대방을 압박해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였다.

이재황은 질럿부대와의 전면전을 피하면서 상대 본진에 별동대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다. 프로토스 본진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이재황의 저글링 부대는 일꾼 다수를 사냥하고 적의 유일한 넥서스에 흠집을 냈다.

이재황은 이후로도 수차례의 저글링 게릴라를 감행했다. 김인기의 넥서스에 피해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재황은 노골적으로 넥서스만 노렸다. 옆에서 프로브가 미네랄을 캐든 말든 넥서스만 두들겼다. 포토 캐논도, 드라군도, 필사적으로 일꾼비비기를 시도하는 프로브들도 그의 넥서스 테러 의지를 꺾지 못했다. 결국 김인기의 넥서스가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러나 아직 게임이 완전히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이재황 역시 저글링 생산에 자원을 과투자한 상태였다. 김인기가 넥서스를 재건한 뒤 천천히 몸집을 불려나간다면 충분히 역전을 노릴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해설진도 그 부분을 강조했고 시청자들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김인기의 본진엔 정적만이 흘렀다. 그 어떤 프로브도 넥서스를 재소환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미네랄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넥서스를 지을 미네랄 400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남겨놨겠죠?”

“…안 남겨놨나요?”

“없나요? 없어요!”

“아, 있어요!”

“……399!”

김인기는 미네랄 1이 부족해 넥서스를 소환하지 못했다. 별 수 없이 그는 프로브 다수가 포함된 총병력을 이끌고 이재황의 본진으로 향했다. 그러나 올인 러쉬의 낌새를 눈치 챈 이재황이 성큰 콜로니로 방어체계를 구축하면서 응수했다. 김인기는 성큰밭을 공략하지 못한 상태에서 병력 전부를 잃었고 결국 GG를 선언했다. 

경기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김인기는 ‘잭필드토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미네랄 399’가 당시 광고방송을 통해 바지 3종을 ‘39,800원’에 판매하던 의류 브랜드 잭필드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 박상우, ‘벽 하드캐리’로 리콜 막다

2008-2009 신한은행 프로리그에서 김재훈과 박상우가 만났다. 김재훈은 소속팀(MBC게임)이 세트스코어 2대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 이 경기에서 승리할 시 3대0 완승을 이끌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맵 ‘신청풍명월’에서 무난하게 트리플을 가져간 김재훈은 빠른 아비터 빌드오더로 미래를 도모했다. 박상우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탱크와 벌처를 전진 배치한 상황.

김정민 해설위원은 “운으로라도 저 아비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면서 테란의 미래를 비관했고, 김창선 해설은 “본진에 스파이더 마인이라도 좀 깔려있고 그래야 아비터 수비가 될 텐데, 리콜 한방에 타격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아비터가 테란 본진으로 파고든 뒤 리콜을 시전한 곳은 공교롭게도 벽으로 판정된 장소였고, 옵저버 1기만이 덩그러니 소환됐다. 두 공중유닛은 곧 마사일 터렛에 제압됐다.

“너무 황당해서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프로리그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3순위, 아니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박 사건이네요”

김창선 해설위원 말대로 김재훈의 상황은 암울해졌다. 벽의 도움을 받은 박상우는 확장 기지를 불렸고, 강력한 메카닉 물량을 앞세워 김재훈을 제압한다.

이후 이 사건은 리콜이 그대로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서 ‘버뮤다 리콜’로 불리게 된다.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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