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스토리-우리은행] “파벌은 옛말”… 민영화 바탕 지주사 도약 부푼꿈

기사승인 2017-04-24 08: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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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김태구 기자] 우리은행은 1915년부터 100년이 넘게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금고지기를 하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갖춘 은행이다. 전신인 한일은행은 ‘응답하라 1988’에서 출연배우인 성동일이 근무했던 은행으로 소개돼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은행은 서민들 곁에서 함께 한 친숙한 금융사다.

서민과 늘 같이 했던 만큼 IMF구제금융 당시 구조조정의 아픔도 고스란히 겪었다. 2001년 약 13조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지난해 민영화가 되기 전까지 정부의 관리·감독 아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관치금융, 불법대출, 파벌갈등 등 부정적인 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통해 민영화를 성공하고 종합금융사로 도약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대기업 주거래 은행, 천주교 협력관계 

우리은행은 하면 떠오르는 건 서울시금고다. 1915년 3월 경성부청과 금고 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조선상업은행 시절부터 100년 넘게 서울시 금고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관련 관공서, 각 구청 및 산하시설, 서울시립대 등에 우리은행 지점이 들어서있다.

또한 주채무계열이라는 재벌 대기업들의 주거래 은행에서도 우리은행은 부동의 1위다. 우리은행이 관리하는 주채무계열 대기업은 삼성, LG, 포스코, 한화, 두산, 효성, CJ, 대림, 코오롱, 한국타이어, 아주산업, 한라, 이랜드 등 13곳이다.

서울대, 포항공과대, 연세대, 서울시립대, 서강대, 성균관대, 단국대 등 국내 대학에 최다 입점해 있으며 한국 가톨릭(천주교)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관련 대학과 성당에서 학생증, 신자증 등 소속감을 보여주는 특별한 형태의 현금(체크)카드를 발급해 준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은행의 신규고객은 매년 100만명씩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 개인고객수는 2300만명 정도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은행 영업점포(출장소 등 포함)와 자동화기기(AMT·CD 등)는 각각 894곳, 7490대다. 

하늘아래 첫째가는 은행

이런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란 두 큰 줄기가 합쳐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업은행의 전신은 1899년 1월 30일 대한제국의 황실자본과 조선상인이 중심이 돼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다. ‘대한제국 하늘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것이 은행명에 담긴 의미다. 창립 이후 1899년 인천과 개성에 지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후 분단으로 2004년 개성에 지점이 들어서기 까지 우리은행은 100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대한천일은행은 상업은행으로 명칭을 바꾼 후 1959년 여성만을 위한 은행 영업점인 ‘숙녀금고’를 개설해 금융지원을 통한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왔다. 또 다른 한줄기인 조선신탁주식회사는 여러 차례 합병을 거쳐 1960년 한일은행으로 명칭을 바꿨다. 한은은행은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IMF시련, 정부 손 빌리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업·한일은행은 부실로 인해 통합,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했다. 이후 경남, 광주, 평화 등 3개 은행이 추가 합병해 2001년 우리금융지주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약 1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 우리금융지주 지분 100%를 소유하게 됐다. 당시 ‘보통명사가 특정은행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우리’라는 명칭을 은행명으로 사용하게 됐다. 

정부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자본확충과 외화차입 등으로 신인도를 제고하고 부실자산과 고정자산을 감축했다. 또한 신용리스크관리시스템(CRMS)을 개발해 은행의 내실을 다졌으며 성과주의 문화도 정착시켰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은행 임직원들이 내부 업무보다는 정부 측 주요 인사와 친분을 쌓는 데 주력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서울 관악지점 아크월드 불법대출 사건, C&그룹 2000억원대 특혜성 대출 등 관리 부실도 드러났다.

한일·상업, 파벌갈등 진실은

1999년 합병 이후 우리은행에 따라다닌 꼬리표는 한일은행과 상업은행간의 파벌 갈등이다. 인사이동 때마다 같은 은행 출신의 지점장과 부지점장을 배치시켰다. 임원도 상업과 한일 출신을 각각 절반씩 뽑기도 했다.

최근에는 은행장 선임에서도 파벌 갈등을 보이기도 했다. 한일은행 출신 이종휘 은행장 이후 상업은행 출신인 이순우·이광구 은행장이 CEO를 역임했다. 이에 따라 ‘민영화 1기 은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을 뽑아야 한다’는 한일쪽의 목소리가 거셌다.

이런 파벌 갈등 비판에 대해 우리은행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파벌은 있을 수 없다. 1999년 한일과 상업이 합병한 지 20년이 다돼 간다. 합병 후 입행한 사람들은 거의 50대다. 지점장급 일부 20∼30%정도만 한일, 상업 계열이다. 지금은 통합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말 노조 위원장 선거에서도 한일, 상업 관련 이야기가 없었다. 후보 프로필도 우리은행 입사로 돼 있었다. 한일, 상업으로 적는 모습은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이광구 은행장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출신보다는 성과 위주로 인사를 하겠다”고 공헌하며 파벌 갈등을 일축했다. 

4전5기 끝에 민영화 성공 

정부는 민간에 매각하고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민영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우리은행의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점은 2010년부터다. 이후 금융위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통해 꾸준히 우리은행 매각 공고를 냈다. 2013년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을 각각 BS금융지주(현 BNK금융지주)와 JB금융지주에 매각했다. 같은 해 우리투자증권도 NH투자증권에 넘겼다. 

하지만 가장 큰 규모였던 우리은행은 4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분을 여러 투자자에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방식으로 민영화에 성공했다. 현재 우리은행은 동양생명,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키움증권, 한화생명, IMM PE로 구성된 과점주주가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금융사 스토리-우리은행] “파벌은 옛말”… 민영화 바탕 지주사 도약 부푼꿈미래로 향하는 우리은행, 금융지주 받돋움

우리은행은 유독 최초 수식어가 많다. 2015년 4월 은행권 최초 인터넷 전용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Wibee)을 설립한 후 사잇돌 중금리 대출의 모태가 되는 서민금융상품인 ‘위비 모바일 대출’도 출시한 바 있다. 

지난해 민영화를 성공한 후 우리은행은 종합 금융지주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2월말 삼정회계법인과 법무법인 김앤장을 자문사로 선정해 관련 법적, 재무적 컨설팅을 받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은 내년 상반기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지주사로 전환되면 과점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증권, 보험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에 대한 인수합병(M&A)에 들어갈 것이다. 종국적으로 과점주주들과 협의를 통해 증권·보험사도 인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민영화 이후 첫 행장으로 내정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민영화 원년으로 새로운 지배구조의 시험대에 섰다”며 “새로운 내일, 더 강한 은행이 되기 위해 자회사를 성장시키고 M&A도 적극 검토해 경영성과를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ktae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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