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 “야구기록원요? 심장으로 하는 거죠”

기사승인 2017-04-25 14: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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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문대찬 기자] 조선시대에는 어진회의와 궁 안에서 일어나는 왕실에 관한 대소사 모든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사관(史官)이 있었다. 사관은 왕의 곁에서 철저하게 공정성과 소신에 따라 역사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사사로운 역사까지 한 데 모은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했다. 

프로야구에도 사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야구 경기 도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원이다. 

KBO 공식 기록원 최성용 팀장은 1997년 입사한 이래 퓨처스(2군) 경기를 포함 지난해까지 프로야구 2347경기의 기록을 맡은 프로야구의 산증인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록원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프로야구 공식기록원이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1997년 입사해 지금까지 KBO에서 공식 기록원을 담당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 프로야구 1군 2034경기의 기록을 맡았고 퓨처스 경기 313경기를 포함, 총 2347경기에 기록원으로 출장했다. 현재는 퓨처스팀 팀장을 역임 중이다.

◎기록원은 어떤 일을 하나=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공식 기록원이 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수기로 기록지에 기록을 기입하는 1인과 전산으로 기록을 입력하는 1인이 한 조가 돼 함께 일한다. 단순히 경기 내용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자가 1루로 출루 했을 때 그 근거를 판단하고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안타로 출루했는지, 야수 선택으로 출루했는지 혹은 실책으로 출루했는지 판정하는 것은 심판이 아닌 기록원의 몫이다. 투수의 평균자책점, 타자의 타율도 기록원의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일과는 이렇다. 주로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야구장에 도착해 기록지와 전산 장비를 체크한다. 그리고 1시간 전에 각 팀 27명의 선수 라인업을 심판에게 건네받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 후에 본격적으로 경기를 맞을 준비를 하는데 이 때 물이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은 조절하거나 자제한다. 클리닝 타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KBO와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에 기록지를 전송한 후에도 일과가 이어진다. 필요에 따라 중계 영상 등을 통해 기록에 대한 피드백을 거친다. 다음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하루를 야구로 시작해 야구로 마무리하는 셈이다.

◎실책에 대한 판정처럼 주관적인 기록도 있는데 부담감은 없나=그 부분이 기록원의 핵심이다. 기록원이 내린 하나의 판단으로 한 투수의 노히트노런이 달성될 수도, 혹은 깨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록은 철저히 규칙에 의해 적용되지만 타구 판단 등과 같은 부분은 기록원이 직접 보고 판단해야 되는 부분이다. 부담이 없을 수 없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2000경기 넘게 기록원 일을 했다. 모든 경기가 기억에 남지만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과 미국의 맞대결 기록을 맡았던 일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당시 미국은 초호화 팀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비롯해 치퍼 존스, 데릭 지터, 켄 그리피 주니어 등 유명한 선수들이 많았다.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는 기록원들이 서서 기록 작업을 한다. 워낙 긴장 한 탓에 펜을 제대로 쥐지도 못하고 떨면서 기록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국이 미국을 7대3으로 꺾으며 승리했을 땐 몸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이승엽 선수의 홈런 기록과도 인연이 깊은 편이다. 56호 홈런을 쏘아 올리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할 때 기록을 맡았다. 통산 400홈런, 600홈런을 쏘아 올린 현장에도 있었다. 박경완의 4연타석 홈런, 이대호의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신기록 경기도 기록했다.

무제한 끝장 승부를 치렀던 2008년 한화와 두산의 경기도 기억에 남는다. 18회 5시간 51분간의 긴 경기였다. 18회 2사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잊지 못할 경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록원 일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꼽자면=야구를 원 없이 볼 수 있어서 좋지만 한 편으로는 응원하는 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아쉽다. 팬으로서 야구를 즐겼을 때와 직업으로 야구를 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일반적인 팬이라면 끝내기 홈런을 보고 환호하고 좋아할 테지만 기록원은 홈런이 나오는 즉시 전광판을 확인하고 코스와 비거리, 종료 시간, 심지어 홈베이스를 주자가 밟는 순간까지 매의 눈으로 전부 지켜보고 기록해야한다. [듣보잡] “야구기록원요? 심장으로 하는 거죠”

◎기록원이 갖춰야 할 자질이나 역량이 있다면=1년에 8개월 정도 시즌을 치르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이 우선이다. 지방 출장도 잦기 때문에 월요일에 경기가 없더라도 지방으로 이동하느라 쉴 틈이 없다. 체력이 달리면 집중력도 떨어진다. 기록원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만약 주자가 런다운에 걸렸다고 치자. 기록원은 펜으로 수비자의 위치와 주자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그런데 순간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기록에 공백이 생긴다. 한 눈을 팔면 사고가 나는 운전과 비슷하다.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 나면 어깨도 아프고 눈도 피로하다.

고된 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중요하다. 나는 야구라는 단어를 심장이라고 표현한다. 내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야구를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공식 기록원 모두 마찬가지일 거다. 기록원이나 야구와 관련된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을 토대로 틈틈이 기록을 연구하고 각종 강습회를 통해 기록 작업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좋다. 

◎준비 과정과 채용 정보를 알려 달라=일반 야구팬들을 위한 KBO 기록 강습회 초급과정이 매년 1월에 3일간 열린다. 수강인원은 330명 내외인데 경쟁이 치열해서 30분 내로 조기 마감되니 서둘러 신청해야 한다. 

사회인 야구 등에서 기록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중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KBO 전문기록양성과정도 준비돼 있다. 1월 하순부터 2월까지 총 4주간 주말 5시간씩 총 40시간에 걸쳐 교육을 실시한다. 

2016년부터는 KBO 지역 강습회도 마련됐다. 올해는 광주에서 1월에 3일간 강습회가 열렸다. 다음해에도 지방 강습회가열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


◎약력

96년도 수습 기록원

97년도 KBO 공식 기록원

한국시리즈 3회 출장(2006·2008·2012)

올스타전 4회 출장

2006년 제1회 WBC대표팀 더그아웃 기록원

2008년 일본 아시아시리즈 공식 기록원 

2012년 부산 아시아시리즈 공식 기록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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