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기자]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돌을 갓 지난 아이의 몸에 비해 응급실 침대가 넓어 휑해 보일 정도다. 주사가 무서운 아이는 바늘이 닿기도 전에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자주색 수술복 차림의 간호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가며 주사를 놓는다. 정맥혈관은 요리조리 간호사를 따돌리지만, 무릎까지 꿇고 열중한 그의 손끝을 피해가진 못한다. 아빠는 버둥거리는 자식을 ‘포박’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주사를 밀쳐내는 아이의 팔을 너무 세게 잡자니 마음이 무겁고, 살살 붙들려니 주사가 잘못될까 걱정이다. 그 옆에 선 할아버지는 손자를 달래느라 “우리 아가”를 연발한다. 한편에선 연이은 응급환자로 동분서주하는 의료진의 땀 냄새도 훅 밀려온다. 5월 26일 오후 6시6분. 한일병원 응급의료센터의 ‘불금’ 풍경이다.
지린내와 땀, 피비린내가 소독약이 뒤섞여 일순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응급실을 채운 고통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매일은 흡사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한다. 달달한 로맨스로 버무린 드라마 속 응급실과는 전혀 딴판이다. 현실 속 그것의 장르란 액션·하드코어 활극에 가깝다.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한일병원은 13만6898 세대의 34만8220명이 거주하는 도봉구내 유일한 종합병원이다. 인구 32만7195명, 14만1229세대의 강북구까지 사실상 ‘커버’하는 터라 의료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에만 5만3000명이 넘는 환자가 응급실을 찾았고, 5월 한 달 동안 5000명의 응급환자를 받았다. 인구가 많다보니 급작스런 환자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26일 밤 응급센터는 한 명의 당직의를 비롯해 전공의 2명, 인턴과 PA, 십여 명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2명 등으로 채워졌다. 스무 명 남짓, 의료진의 고군분투는 주말 오후가 되면서 사투로 뒤바뀌고 만다.
응급센터는 크게 중앙구역(CPR)과 중증환자구역(환자관찰구역), 소아구역으로 구분된다. 소처치실과 두 개의 처치실, 중증도분류실, 간호사실, 초음파실, 세척실, 당직실 등이 동선을 고려해 적절히 배치돼 있다. 침상은 중앙구역을 중심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멀어지도록 설계됐다.
A씨의 비명소리가 멈출 줄 모른다. 환상 환자인 그는 처치실로 곧장 옮겨졌다. 소독과 드레싱이 시작되자 고통스런 절규가 응급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아아아악! 아파요. 너무 따가워요!”
“라면 국물에 데였고 손상 부위는….” 환자의 상태는 수시로 보고된다. 환자 돌보랴 보고하랴 레지던트 1년차 정영윤(34) 전공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응급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도 그는 침착하고자 애쓴다.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고통의 경감이 제때, 적절히 이뤄지려면 당황은 금물이다. 짧지 않은 응급실 생활 동안 ‘평정심 근육’이 제법 붙은 모양이었다.
“환자분 많이 아프죠? 이제 다 끝나가요. 조금만 참으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정하다. 고작 말 몇 마디지만 효과는 꽤 크다. 비록 당장 환자의 고통을 일소시키진 못해도 심리적 안정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만취 상태로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이마저도 공연한 트집의 빌미로 삼곤 한다.
◇ 취객의 막말·욕설·폭행은 골칫거리
응급실이 빠르게 환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옆구리야.” “할머니 혈압 재는 거 금방 끝나요. 상처는 없는지 잠깐 볼게요.” “여기가 아파요?” “으으으억.” “통증 심하시면 아픈 거 나아지는 주사 놔드려요?” “아이고 나 죽네.” “야 이 개XX들아! 아파죽겠다고. 어떻게 좀 해봐!” “환자분 정확히 어떻게 아픈지 설명을 해 주세요.” “아프다고 씨X!”
성난 언어가 떠다닌다. 막말과 욕설, 폭력은 의료진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수일 전에도 술에 취해 의료진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일이 있었다. “취객 환자분이 가장 힘들어요. 피범벅이 된 상태로 실려 오는데 진정시키려면 한참이 걸리거든요. 치료 협조가 너무 어려워요.” 이 말을 하는 하철민(38) 당직의도 적잖이 ‘당한’ 눈치다.
박종욱(29) 보안원은 취객이 소란을 부릴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최근에 한 보호자가 술에 잔뜩 취해서 응급실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취객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서 입장을 막고 있거든요.” 주취자의 ‘방문’은 비단 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동은 어림잡아 일주일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 명색이 보안원이지만 역할은 제한적이다. 소동을 피우는 주취 폭력의 대응은 늘 조심스럽다. 제지하는 과정에서 자칫 폭행죄로 고소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예요. 취객들은 간호사를 더 얕잡아 보고 행패를 부리거든요.”
“환자분이 소릴 지르고 욕을 하면 저희도 사람이라 스트레스를 받아요.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하고 있거든요.” 손다혜(33) 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12년차 응급실 경험을 가진 베테랑 간호사이지만,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주먹질과 거친 욕설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환자들의 고통 섞인 신음의 잔향은 유독 강렬하다. 이는 비단 통증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응급실을 지키는 이들의 귀에도 자극적인 흔적을 남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심할 때면 손 간호사는 운동으로, 안주하(28) 간호사는 ‘혼술’로 푼다. 고강도 업무와 스트레스. 응급실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응급실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응급실에선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진정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응급실만의 장점이죠”
하철민 당직의가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이제 슬슬 시작이에요. 불금이라 술도 많이 드실 테고.” 아닌 게 아니라 속속 구급차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창 바쁠 때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해요.” 지금은 비교적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하루를 꼬박 일하고 반나절 쉬고 다시 응급실로 직행하는 생활에 인이 박힌 그다. 밤샘 근무 후 찾아오는 불면증은 응급실 생활의 덤. 한밤 중 ‘급한 환자’에 대한 처치가 얼추 마무리되면 까닭 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공연히 생각이 많아져서….” 그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소처치실은 이미 아비규환이다. 어린 환자들의 울음소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안주하 간호사는 아이들을 다루는데 익숙하다. “하나도 안 아프지? 잘 참고 대단하네.” 간호사의 칭찬에 아이가 눈물을 뚝 그친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는 겁을 집어먹고는 바싹 얼어있다. 까맣고 작은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10시15분. 일순 긴장감이 흐른다. 중증구역에 의료진이 속속 모여들었다. 막이 쳐진다. 환자의 심장박동이 지나치게 빠르다. 병력이 있었다. 의료진은 심전도를 확인하며 약물을 투여했다. 박동은 점차 정상을 찾아간다. 막이 걷힌다. 외줄위에 선 듯 매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런가하면 다른 환자는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을 나선다. 가기 전 전공의에게 인사를 꾸벅한다. 이 시각 4개 베드를 제외하고 응급실은 환자들로 가득 찼다. 차트 작성을 얼추 마무리한 스텝 한 명이 안경을 벗는가 싶더니 책상에 고개를 박고 졸기 시작했다. 그는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이내 다른 이가 와서 차트를 찾고 전화를 받자 그제야 자리를 비켜준다. 어깨에 피곤이 잔뜩 눌어붙어 있었다. 응급실 시계는 이상하다. 빨리가기도 더디 가기도 한다. 환자가 ‘적당히’ 몰려들면 잘 가지만, 너무 바쁘면 오히려 느려진다. 누가 시계에 장난을 쳐둔건 아닐까.
“저는 이제 차트 마무리하고 갈 거예요.” 간호사의 말이 끝내기 무섭게 한 보호자가 그에게 말을 건넨다. “딸내미가 속이 안 좋다고 하는데 잠깐 와봐요.” 간호사가 달려간다. 환자의 상태변화는 미세한 것이라 해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때때로 심각한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나 예민하다.
더러 재미난 환자들도 응급실을 찾는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젊은 부부가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응급실을 찾았다. “왼쪽 코에 비비탄이 들어갔어요. 이 사고뭉치들, 가만히 앉아있어.” 아빠의 말에 보호자 몇 명이 키득댔다. “비비탄이 들어갔대. 호호.” 의사는 앞니가 빠진 개구쟁이를 소처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울음소리가 한번 들리는가 싶더니 ‘비비탄 제거’는 무사히 끝났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아빠는 급기야 ‘인증샷’을 찍을 기세다. 아내는 철없는 남편이 얄밉다.
자정이 지나 정영윤 전공의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응급실도 소강상태다. 그러나 한편에선 걸쭉한 육두문자가 여전하다. “이놈들아, 나 잡아먹으려고 뭘 찍는다고 하냐? 나 죽는다. 아이고 나 죽어.” 엑스레이 촬영의 이유를 거듭 설명하는 의료진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난다. “환자분, 기본 검사라 찍어야 해요.” 이번엔 보호자가 앞을 가로막는다. “엑스레이다 CT다 찍고 검사한다고 하면 어쩌냐고. 찍기만 하면 다야? 그러면 돈 안 드는 걸 찍으라고.”
처치실에서 화상환자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아아 씨X.”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더 아파요.” “이름 말씀하세요. 주민등록번호도요.” “몰라. 씨X.” “환자분 이번에는 전화번호 불러보세요.” 의사는 환자의 정신을 차리게 하고자 연거푸 말을 건다. 대개 짜증이 뒤섞인 대꾸가 돌아온다. 어쩔 수 없다.
아침이 오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환자가 응급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이는 화를 냈고 다른 이는 욕을 했다. 근무를 마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밤은 환자가 적었어요.” ‘비교적 환자가 적었던’ 금요일 밤을 지나 아침을 오고 다시 밤이 될 때까지 몇 곱절 많은 환자가 응급센터에 찾아올 것이다.
하룻밤 기자가 머물렀던 응급실의 풍경은 일 년 내내 비슷한 모양새로 반복된다. 그러나 매일의 풍경은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이다. 환자의 신음과 보호자의 눈물, 의료진의 다급한 손길이 뒤섞여 피와 땀으로 채워진 드라마는 매일 새롭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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