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페이스북-SK브로드밴드 사태’, 이용자 볼모 잡지 말아야

기사승인 2017-06-0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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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페이스북-SK브로드밴드 사태’, 이용자 볼모 잡지 말아야

[쿠키뉴스=김정우 기자] 페이스북과 국내 통신업계와의 갈등이 불거졌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볼모로 잡힌 상태다.

발단은 페이스북이 국내 KT 망에 설치된 캐시 서버로부터 SK브로드밴드로 향하는 접속 경로를 끊었다는 것이 미디어를 타게 되면서부터다. LG유플러스 이용자들도 무선에 한해 데이터 접속이 제한됐다.

이에 일부 이용자들이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 이용에 속도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이용자 불편이 발생하는 만큼 사업자 간 불공정 행위 또는 이익 침해 여부 등을 살펴보겠다”며 실태조사에 나섰다.

배경에는 인터넷 회선을 통한 콘텐츠 트래픽 증가 문제가 깔려 있다. 인터넷 망을 제공하는 통신 사업자(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는 늘어나는 트래픽에 따른 망 증설 비용이 증가하고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인 페이스북은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부담하길 꺼려하는 상황이다.

국내 페이스북 접속의 주요 경로는 홍콩을 경유한다. 페이스북 트래픽이 증가할수록 통신사는 홍콩에서부터의 망 증설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주요 접속 콘텐츠를 임시 저장하는 캐시서버를 국내 SK브로드밴드 망에 추가하는 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페이스북은 서비스 품질 제고를 위해 홍콩 외에 국내 KT 망에 캐시서버를 두고 병행 접속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이 서버에 접속해 페이스북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해당 경로에 대한 페이스북의 라우팅(전송)이 제한된 것이다.

통신업계는 페이스북이 해당 경로 접속을 끊고 SK브로드밴드 망 캐시서버 설치 협의 과정에서 전용망 사용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며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다수의 이용자를 볼모로 협상 우위를 점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페이스북은 “KT 캐시서버 접속은 통신사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에 따라 통신사업자 간 협의 없이 지속할 수 없게 됐다”며 “추가 캐시서버 구축은 강요가 아닌 제안이며 설비 관련 비용은 부담하지만 한국에서만 추가적인 전용망 비용을 내는 것은 원칙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4년 통신사 간 접속 비용을 정산토록 하는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양측의 대립은 각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업 간 자연스러운 협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해관계에 이용자들이 볼모로 잡힌다는 불편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서비스 품질을 언급하는 양측의 주장도 각자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페이스북은 상호접속고시 개정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접속을 중단한 주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통신업계가 상호접속고시 개정 이후 망 사용료를 높였다 해도 서비스 품질 저하를 초래하는 조치는 이용자 입장에서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통신업계 측에서도 고민해야할 부분이 있다.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제공하는 전용망 가격의 정당성 문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은 현재 통신사에 적지 않은 전용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구글 등 글로벌 업체도 망 사용 비용을 정산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기업의 사용료와는 격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시장 경제 논리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라도 형평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봐도 인터넷 사용이 생활의 일부가 된 시대에 이 같은 불협화음은 불편하다. 인터넷 망은 사실상 공공재 성격의 인프라다. 페이스북과 같은 보편적 서비스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페이스북이 한국 시장을 등한시 한다’거나 ‘통신사 욕심이 한국 글로벌 서비스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등의 양측 주장은 이들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용자들을 볼모로 잡은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는다.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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