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양균] ‘소풍’가는 날, 노인은 말이 없다. 몸에 연결된 여러 의료장비가 그의 상태를 말해줄 뿐이다. 문득 아내의 걱정스런 시선이 느껴진다. 이따금 전해지는 노면의 진동. 노인은 눈을 감는 것조차 힘이 든다. 의료진과 각종 생명유지 장치로 둘러싸여 있는 그에게도 푸른 젊음의 시절이 있었다. 종로통을 한참 달리고 있노라면 오른편에 앉은 아내는 이웃집 이야기며, 그날의 반찬 걱정 따위를 재잘거렸을 것이다. 루게릭병이 그를 육신에 가두기 전, 세월과 병마에 쓰러지기 전에. 

“S병원에서 B병원까지 환자분 이송 시작합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 중증환자 이송서비스(SMICU) 구급차 안. 선경민 서울대병원 교수(36)와 허소라 간호사(30), 이주희 응급구조사(33)는 루게릭병 환자의 이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SMICU 환자 안전 타임아웃’에 따라 꼼꼼한 점검이 진행됐다. ▶환자 확인 ▶간호정보 인수사항 ▶환자 감시 장비 ▶정맥로 ▶의료장비 ▶환자 유치 도관 ▶의약품·혈액 ▶물품 관리 ▶안전벨트 등 꽤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순서였다. 

선 교수가 말했다. “환자분의 혈압이 낮아서 이송하면서 계속 확인해야 해요. 중증환자의 전원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진행돼야 하거든요.” 선 교수는 이송의 최종 목적은 환자의 안정성 유지라고 설명해 주었다.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인’ 구급차는 SMICU와 다르지 않은가. 에크모(ECMO, 체외막 산소화 장치) 등 중증환자를 위한 약과 의료장비가 없지 않은가. SMICU는 오직 한 대뿐이지 않던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의료진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오후 2시39분 SMICU 구급차의 바퀴가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선 교수는 보고와 확인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SMICU 의료팀입니다. 환자 출발합니다. 15분 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2차 감염을 방지코자 의료진은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별도의 감염 매뉴얼에 따른 소독 절차가 존재한다). 에어컨은 연신 찬바람을 내뿜고 있지만, 도로의 열기와 한낮의 태양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땀은 땀이지만 의료진이 흘리는 땀의 종류는 기자의 그것과 성격이 다르다. 진땀에 가깝다. 별 탈 없이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는 부담과 긴장이 이들의 몸과 마음을 쥐어짜고 있었다. 

반면 환자는 안정돼 보였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선 교수는 “불편하지 않게 모셔다 드리겠다”며 외침에 가까운 설명을 연신 전했다.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휴대용 인공호흡기를 비롯해 여러 의료장비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와중에 환자의 발이 시야에 들어왔다. 과거 건장했을 그는 두 발로 세상을 누볐을 것이다. 어쩌면 의료진이 하고 있는 일은 이송이라는 의학적 행위 이전에 한 사람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5분 거리이지만 체감 시간은 길었다. 교통체증 등을 고려하면 전원 과정은 2시간 남짓이 걸린다. 이송 준비와 후속조치, 환자를 구급차에 올리고 내리는 전 과정을 미루어 볼 때 결코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없지만, 관련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어떻게’보다 ‘얼마나’에 집중할 것이다. 효율과 실적에 의료진의 ‘진땀’이나 환자의 삶은 고려되지 않는다. 외침 같은 사이렌이 서울의 이름 모를 도로를 울며 내달리는 동안, 줄어드는 연료처럼 의료진의 체력도 빠르게 소모된다. 

SMICU 구급차의 내부는 중앙의 환자를 중심으로 ㄷ자로 의료진의 자리가 고정돼 있다. 전문의 1명과 처치팀 1~2명이 늘 자리를 지킨다. 쉴 새 없이 울렁거렸다. 허소라 간호사의 낯빛은 “괜찮다”는 본인의 말과는 달리 점차 하얗게 변해갔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노면은 늘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이동병상은 단단히 고정돼 있지만, 안전벨트로 버티는 의료진은 지속적인 흔들림에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날의 운전은 ‘베스트 드라이버’로 알려진 문영주 응급구조사(46). 의료진은 “운이 좋다”며 기자에게 농을 던졌지만, 흡사 월미도의 놀이기구를 타듯, 파도 위의 돛단배인 듯 흔들리는 차 안에서 점차 노래지는 천장만 바라보아야 했다.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은 베테랑 의료진만 SMICU팀에 선발된다. 이른바 ‘선수’들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능숙하고 ‘매운’ 손은 필수다. 한번은 거구의 환자가 발작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 의료진을 녹초로 만든 적이 있었다. 가급적 이송 환자를 재우고자 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상태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이렇듯 어렵게 도착해도 환자의 상태나 병원의 상황에 따라 한참을 기다리거나 이송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타병원 의료진을 도와가며 겨우 이송할 병원에 도착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있어요. 병상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죠.” 선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는 현실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것일 터. 당면한 의료현실이 그의 말에 배여 있었다.  

부족한 병상만큼 응급환자를 돌볼 의료진의 손이 모자라다. SMICU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중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진과 약,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의료진의 돌봄 없이 막무가내로 이송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는 여러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되지요.” 그러나 SMICU는 한 대뿐이라는 기막힌 아이러니는 ‘아프면 손해’라는 비정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B병원에 도착했다. 다시 한바탕 정신없는 시간이 몰아친다. SMICU 팀은 환자를 중환자실에 제대로 내려놓기까지 안심하지 못한다. B병원의 주치의는 진료소견서를 전달받고 선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전달했다. 이송이 완료됐음을 알리는 양식에는 환자의 상태와 병력, 상태 관리, 전원 이유, 이송 단계시의 환자 상태, 활력 정도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B병원의 주치의는 SMICU의 장비를 처음 보는 듯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노인에게 여러 손이 달라붙는다. “환자분이 예민해서 서둘러야 합니다.” 급한 일이 얼추 마무리되자 저마다 생리현상을 해결한다. 정수기를 찾아 목을 축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SMICU 구급차로 돌아오면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소독제를 묻힌 거즈로 환자가 접촉했던 부분은 전부 닦아내야 한다. 의료장비의 복잡한 ‘선’ 역시 전부 소독하고 정리를 해두어야만 비로소 이송이 끝난다. 복잡다단한 서류 작업은 덤.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고작 5분 남짓이다. 구급차는 이미 다음 이송 병원으로 한참 달리는 중이다. 

이주희 응급구조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키가 커서) 여기저기 부딪치곤 해요.” 가장 힘든 게 무어냐는 기자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유쾌했다. 지난 1월 팀에 합류한 그는 늘 긴장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이렇듯 ‘쫀득쫀득’한 마음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고 예의 미소를 보였다. 

이후에도 ‘우린’ 몇 군데의 병원을 더 거쳤다. 이송 예약이 이어지면, ‘서울구경’은 더 길어진다. 구급차에서 식은 빵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면 다행이다. 힘들지 않냐는 우문은 무의미했다. 이들의 일상은 고됐다. 고충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생사의 중간 어디쯤 가장 가까운 곳에 SMICU팀이 있었다. 의료진은 어쩌면 환자의 생, 그 마지막 서울구경을 함께 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환자의 생이 지속되길 바라면서 SMICU는 오늘도 달린다. 불안과 걱정, 그보다 큰 희망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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