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리얼' 토막 난 영화 속의 생생한 캐릭터, 애잔한 김수현

'리얼' 토막 난 영화 속의 생생한 캐릭터, 애잔한 김수현

기사승인 2017-06-27 00: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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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리얼' 토막 난 영화 속의 생생한 캐릭터, 애잔한 김수현[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리얼’(감독 이사랑)은 카지노를 둘러싼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시나리오나 시놉시스 소개는 ‘리얼’에서 무의미하다. 이야기 구성이 난해하기 그지없고, 얼개조차 사라져 남은 자리엔 조각난 미장센만이 이상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카지노를 운영하는 조직폭력배 장태영(김수현)은 해리성 인격장애에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을 정신과 의사 최진기(이성민)에게 맡겨 살해한다. 자신의 인격이 없어진 데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장태영은 카지노를 둘러싼 이권 다툼에 휘말린다. 중국에서 온 마피아 조원근(성동일)에게 카지노를 넘기기 싫어 자금을 알아보던 중, 자신과 이름이 같은 장태영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장태영. 교통사고를 당해 흉측한 얼굴을 성형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작가 장태영의 가면이 벗겨진 순간, 장태영은 자신과 같은 얼굴을 마주한다.

한편 작가 장태영은 작정하고 조직폭력배 장태영에게 접근한 인물이다. 일부러 얼굴까지 장태영과 똑같이 성형했다는 그는 인생의 목적이 장태영이 되는 것인 듯 군다. 장태영이 다니는 병원을 다니고, 장태영의 연인인 유화(최진리)를 보고 유화와 비슷한 여자를 곁에 둔다. 작가 장태영은 자신이 끊임없이 ‘진짜’ 장태영이라고 외친다.

영화 ‘리얼’의 가장 큰 약점은 시놉시스를 연결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면과 조명, 화려한 연출이 있다고 해서 내용이 관객에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연결 고리 없이 따로 노는 장면들과 오로지 CG에만 몰입한 화려함은 사상누각이라는 사자성어를 연상시킨다. 한국에서 촬영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간판이 하나도 없다는 세련됨은 어설픈 137분 안에서 모래처럼 바스라진다. 주인공 장태영의 내면을 보여주는 물은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쓰인 듯 하지만 몰이해 앞에서 말라 비틀어진다.

1인 3역, 나아가 1인 4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열연한 김수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러닝타임 내내 김수현이 나오지만, 두 명의 김수현이라는 눈호강(?)에도 불구하고 그를 마음껏 감상할 수 없다. 돈을 내고 보러 온 영화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눈만 즐거우면 된다는 식의 편리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김수현이 연기한 장태영은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토막난 영화 안에서 캐릭터가 생생해봐야 토막난 횟감이 자아내는 애잔함 이상의 감정은 불러일으킬 수 없다.

최진리의 노출로 화제몰이를 했지만 높은 관심도에 반비례하는 유화 캐릭터의 생동감은 어찌 해야 할까. ‘리얼’ 안의 모든 여성 캐릭터는 성적 유희만을 위해 존재한다. 여성들 수백 명이 벌거벗고 영화 내내 등장하지만 모두 대단히 평면적인 나머지 민망하다는 감정마저 일어나지 않는다. 26일 오후 서울 CGV 왕십리점에서 열린 영화 ‘리얼’ 시사회에서 연출을 맡은 이사랑 감독은 “죄송하다, 다음에는 잘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잘하지 못한 감독, 나아가 본인의 작품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감독에게 다음이란 없다. 그것이 영화계의 ‘리얼’이다.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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