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 소비자 혜택까지 이어질까

기사승인 2017-07-22 05:00:00
- + 인쇄
[기자수첩]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 소비자 혜택까지 이어질까

[쿠키뉴스=김정우 기자] 새 정부의 가계통신비 절감 대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현실성 논란을 일으킨 기본료 폐지안은 보류됐지만 남은 방안들에 대한 엇갈리는 시각은 여전하다.

선택약정(요금할인) 할인율 25%로 상향, 취약계층 지원금 추가 등과 함께 강력하게 추진 가능성이 높은 정책이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와 분리공시제 도입이다.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모두 인사청문회에서 이 부분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도입과 이래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소비자 혜택을 제한한다는 꾸준한 비판을 받아왔다. 게다가 이 제도는 오는 9월 30일까지 일몰될 조항이기 때문에 이견은 많지 않다.

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지원금을 각각 공개하는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와 관련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이 엇갈린다. 국내 유통 구조를 이동통신 업계에 맡기고 글로벌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제조사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제도인데다 실제 소비자 혜택 증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내 최대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과거 단통법 도입 당시부터 이 제도에 반대해왔다.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되는 지원금 부담분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지원금을 높이라는 사회적 압박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원금을 높이면 해외 시장에서도 동등한 수준의 부담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4일 유영민 당시 미래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진해 삼성전자 전무는 반대 이유를 묻는 의원 질의에 “국가별 마케팅 비용이 달라 특정 국가의 마케팅 비용이 공개될 경우 경쟁력 저하 등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 정책 방향이 결정되면 따를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 LG전자는 해당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원금과 별도로 유통망에 제공하는 판매 장려금 규모까지 함께 공개하는 조건 아래 찬성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밝힌 바 있다. LG전자는 이를 모두 공개해야 정책의 실효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온도차를 보이는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시장 지위에 따른 차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비해 LG전자는 마케팅 비용을 공개하는 것이 반전을 노릴 수 있는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해석이다.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새로운 단말기 출시 초기 지원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쓰지 않다가 인기가 시들해질 때 즈음부터 늘려가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LG전자의 경우는 출시 초기부터 지원금을 높게 잡고 이를 유지하는데,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의 마케팅 비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인 만큼 이를 공개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예상할 수 있다. 유통 장려금까지 공개하자는 것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이해관계를 보면 지원금 분리공시제가 직접적으로 소비자 지원금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LG전자의 계산을 봐도 어디까지나 작은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도 “LG전자의 모바일 사업이 현재 최악의 상황인 만큼 변화의 작은 변화의 불씨라도 반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시장에 미칠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지원금 분리공시제가 도입된다 해서 기대처럼 삼성전자가 지원금 규모를 대폭 늘릴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현재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에서 국내 시장 비중은 10%에 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논리대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시장에서만 대규모 지원금을 지출하는 것은 합리적인 경영 의사결정으로 볼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해외 시장에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대로 국내 시장에서 애플 등 해외 사업자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애플 ‘아이폰’ 시리즈의 지원금은 상대적으로 낮다. 애플이 국내 시장을 위한 지원금을 따로 지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지원금을 늘리기도 쉽지 않고, 기존에도 비용을 쓰지 않으면서 국내에서 아이폰을 불티나게 팔아치우는 애플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입장일 것이다. 게다가 지원금이 낮아 선택약정 할인 가입 비중이 높은 아이폰은 요금할인율 상향 정책에 따른 반사이익도 볼 수 있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알 권리’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기 어렵다. 다만 정부가 통신비 절감에 제조사의 동참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의 수단으로만 이를 생각한다면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장 경제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 정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 꼴을 면하기 어렵다.

tajo@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