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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출연자에게 사기 친 예능,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출연자에게 사기 친 예능, 재밌게 볼 수 있을까

이준범 기자입력 : 2017.09.14 13:24:34 | 수정 : 2017.09.14 13:26:22

사진=JTBC 홈페이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하는 고생과 다양한 경험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는 의미죠. 하지만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겪고 있는 최근엔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됐습니다. 지난 1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조선대학교 강연에서 이 말을 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죠.

14일 오전 10시 온라인을 통해 첫 공개된 JTBC ‘사서고생’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예능으로 풀어낸 프로그램입니다. 다섯 명의 연예인이 6박7일간 벨기에로 떠나 숙소부터 식사까지 현지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자급자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여행 예능에 ‘사서 고생’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사서’ 고생한 것이 아니라 ‘속아서’ 고생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지난 13일 열린 ‘사서고생’ 제작발표회는 제작진에 대한 출연자들의 불만과 폭로가 쏟아졌습니다. 보통 프로그램의 특징과 매력,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소개하는 현장 분위기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숙소와 식사를 제공한다고 말했던 제작진이 벨기에에 도착한 후에야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걸 밝혔다는 내용이 핵심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은 숙식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콘셉트를 뒤늦게 알게 된 후 속았다고 느꼈습니다. 당일까지 프로그램 이름도 몰랐던 출연자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타지에서 심한 고생을 한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이날 현장은 마치 리얼리티 예능처럼 제작진과 출연자의 다툼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룹 god 박준형은 “SBS ‘정글의 법칙’처럼 벌레 물리는 것이 싫어서 잠자리만 철저하게 지켜달라고 했는데, 가보니 숙소가 없었다”며 “벨기에 와플도 우리가 번 돈으로 사서 다섯 명이 한 입씩 나눠먹었다. 제작진이 그 모습을 정말 좋아하면서 찍더라. 진짜 사서 고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른 멤버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사기 친 제작진을 죽여 버리고 싶어 했다”는 수위 높은 발언을 했습니다. 박준형은 “소유나 소진이는 안 그랬을 것 같나”라며 “민기도 제작진을 죽여 버리고 싶어 했다. 민기도 사람이다”라고 말했죠.

현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실도 전했습니다. 박준형은 “오랜만에 인종차별도 느꼈다”며 “미국의 1970~80년대 초 같은 느낌이었다. 동생들 앞에서 민망했고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가수 정기고는 예능 첫 출연인 ‘사서고생’을 통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고백했습니다. 정기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힘들었다”며 “촬영 전까지도 프로그램의 이름을 몰랐다. 나중에 현장에서 ‘사서고생’이라고 적혀있는 걸 봤다.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뜻 깊고 값진 경험을 많이 했지만, 다시 하고 싶진 않다”며 “제작진이 거짓말을 했다. 지원을 받아서 특급 호텔이 잡혀있다고 들었는데 숙소가 없었다. 처음으로 예능을 해봐야겠다는 좋은 뜻으로 시작했는데,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고백했죠.

이후에도 정기고는 “확실히 트라우마가 됐다”고 재차 언급한 후 “편집을 어떻게 해도 거지같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출연자들의 말을 듣던 김학준 PD는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맞다고 인정한 것이죠. 김 PD는 “소유, 소진에게는 차마 숙소가 없다는 말을 못하겠더라”라며 “그래서 숙소는 있다고 사기를 쳤다. 지금도 죄를 짓고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박준형과 정기고의 폭로에도 김 PD는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 때문에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배우 김수로가 MBC 예능 ‘은밀하게 위대하게’ 몰래카메라에 속아 급하게 귀국한 것이죠. 당시 김수로는 자신의 SNS에 “아무리 방송 몰래카메라지만 상황 파악은 하고 해야지”라며 “해외에서 일보는 사람을 서울로 빨리 들어오게 하는 건 너무나 도의에 어긋난 방송. 방송이 아무리 재미를 추구하지만 이런 경우는 너무나 화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출연자들을 속이는 몰래카메라는 예능의 재미를 위한 하나의 장치입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에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습니다. 몰래카메라를 당한 사람이 사정을 알고 난 이후에도 웃고 넘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시청자도 그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제작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짓말로 출연자들을 속여서 벨기에에 데려간 제작진의 행동은 누가 겪어도 화를 낼만한 상황인 건 분명하죠. 시청자들은 ‘속아서’ 고생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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