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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이팅게일 선서와 졸업반지

나이팅게일 선서와 졸업반지

김양균 기자입력 : 2017.10.12 00:05:00 | 수정 : 2017.10.11 23:51:14

나이팅게일 선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간호사 윤리 및 간호 원칙이 함축된 이 선서는 4문장의 비교적 단출한 구성이지만, 간호학도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마찬가지로 나이팅게일 선서는 의료인으로서 가져야할 주관과 목표를 제시한다. 그러나 선서의 첫 문장에 대해 기자는 일말의 불만이 없지 않다. 

곧 맞닥뜨리게 되는 의료 현장이란 상상하던 것과는 딴 판이다. 일은 일대로 다하지만, 최저시급은 고사하고 2000원이 채 못 미치는 헐값 노동인력 대우가 꿈꾸는 간호학도에 대한 사회의 첫 대접이다. ‘교육’이란 명분은 거창하나, 실제로는 열정페이와 노동력 착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어디 그뿐이랴. ‘실전’에 투입되면 환자들로부터 막말과 성희롱, 스토킹, 가혹한 노동 강도는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불안한 고용 안정성은 오죽한가. 이뿐만이 아니다.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력의 그늘 역시 이들 앞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 때문에 나는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딛는 이들이 일생을 의롭게 살지 말라는, 다소 이상한 말을 전하고 싶다. ‘의로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계에서, 통용되는 ‘의로움’이란 ‘무조건 참고 버티고 받아들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 부정하라는 이야기다. 

병원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목소릴 내고 끝까지 싸웠으면 좋겠다. 억지로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처절할 것이다. 왕따를 당하거나 재계약에 실패하거나, 병원에서 해고되거나 타 의료기관 취업마저도 막히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가 강요하는 ‘의로움’ 대신 차라리 싸움의 기술을 터득했으면 한다. 증인을 찾고 증거를 수집하고, 녹취를 하시라. 의료계가 특히 ‘법’을 유독 좋아한다. ‘법대로 하자’고 나오면, 이러한 기술들이 요긴할 것이다. 이런 지경까지 가지 않길 바라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나이팅게일 선서의 본질, 사회가 원하는 의로움이 아닌, 간호사로서 자신의 양심과 주관에 따른 의로움을 지키기 위한 이 비정한 방법들을, 그러나 사용할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당신이 간호학도라면 훗날 ‘어떤 기레기가 허튼 소리를 내뱉었지’라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당신에게 앞서 말한 가혹한 시련들이 찾아오지 않길. 좀 더 깨끗하고 상식적인 근무환경이길. 개선 없이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전근대적 사고의 조직에 몸담지 않길.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쯤에서 이 글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을, 새로운 시작점에 선 당신이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촛불을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 상상해보시라. 간호대 졸업 후 당신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을지 말이다. 

1, 2학년 때만 해도 졸업반지 비용으로 20여만 원의 돈을 내놓아야 하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졸업할 때는 어느새 중지에 끼워져 있을 그 반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추억’이려니 하고 꼈을 반지. ‘제 값 주고 산건 맞나’ 싶은 반지. 그러나 병원에선 반드시 빼놓아야 할 반지. 서랍 속을 굴러다니다가 결국 장롱 틈으로 굴러가 사라져 버리고 말 무용지물의 ‘졸업반지’ 말이다.

효용성으로 가치를 매길 수는 없겠지만, 이 졸업반지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선서의 한켠에서 한번쯤 반문해 보았으면 좋겠다. 원하는 사람만큼 원하지 않는 이도 있을 터. 자율성이 전제되지 않는 일괄적인 반지 맞춤은, 그리고 비용 각출은 어째 구닥다리라고 생각지 않는가.

참, 고신대 간호대는 이번에도 졸업반지 비용을 걷으려나?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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