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신비 인하 정책, 큰 그림 봐야

기사승인 2017-10-17 07: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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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통신비 인하 정책, 큰 그림 봐야

국회 과방위의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최근 수개월 동안 이어진 가계통신비 절감 이슈가 어김없이 도마에 올랐다. 여당 의원들은 후속 대책으로 단말기 완전 자급제 도입 필요성에 입을 모았고 야당은 ‘기본료 폐지’ 등 사실상 무산된 공약을 공격했다.

후속 대책에 열을 올리는 여당이나 지난 과정을 비판하는 야당이나 ‘통신비 인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이미 시행된 휴대전화 요금할인 상향만으로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기본료 폐지안에 대한 비난도 목표를 이룰 수 없는 비현실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처럼 가계통신비 절감에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과연 통신비는 얼마나 내려갈 수 있는가’ 또는 ‘얼마나 내려가야 하는가’라는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 제시한 기본료 1만1000원 폐지안은 액수 산정 기준의 모호성과 실제 기업에 돌아갈 부담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요금할인을 25%로 상향하는 결정도 기준의 당위성은 약하고 체감 인하폭은 작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에 실제 가계통신비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단말기 가격에 칼을 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스마트폰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하고 이에 대한 할부금을 월 수 만원씩 납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얼핏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이를 위한 ‘새 판 짜기’라고 볼 수 있다. 현행 이동통신사에서 단말기 유통을 맡고 있는 것을 단말기 제조사 자체 유통망으로 돌리고 통신사는 통신 서비스 경쟁에 주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통망 단순화와 제조사 동참으로 단말기 가격 인하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유통망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만큼 위협을 느끼는 통신사 대리점 등 영세업자들은 극구 반대한다. ‘현행 원스톱 서비스가 사라진다’, ‘새로운 유통망 구축으로 비용만 증가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도 나온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대해서만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시장을 흔드는 정책인 만큼 반대급부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파괴적인 정책의 실제 가격 인하 효과는 얼마나 될까. 업계는 물음표를 던진다. 이미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사는 국내에서만 제품 가격을 크게 낮추기 어렵고 향후 유통망이 어떻게 구축될 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유통망 재구축 비용이 어떻게든 소비자에 전가될 위험도 제기된다.

반면 일각에서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 도입이 당장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올 것처럼 말한다.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내 단말기 평균 판매 가격이 해외에 비해 높다며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해답으로 제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는 마치 제조사가 국내에서만 유독 비싸게 제품을 팔거나 차별적 제품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것처럼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단말기 완전 자급제 효과에 대한 기대를 허황되게 부풀릴 가능성도 있다.

국내 단말기 평균 판매 가격이 높은 것은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소비자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 보다 낮은 가격의 제품 판매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 일부 시장 특화 제품의 경우 가격은 낮지만 국내 시장 니즈와는 동떨어져 있다. ‘소비자 선택’에 따른 결과지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보다 직관적인 유통 체계로 복잡했던 기존 시장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제조사 직접 프로모션에 따른 소비자 혜택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이다. 당장 제품 가격 인하보다 시장 구조 전환을 통해 장기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증대할 기반을 구축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가계통신비 인하 등을 통해 국민 경제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을 ‘마녀사냥’ 하거나 소비자를 호도하면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건전한 시장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그림을 보고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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