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전달체계, 의료계 ‘폭망’하지 않는 길은?

보장성강화 부작용 ‘환자 쏠림’… 경증환자 대형병원행 막아야

기사승인 2017-11-02 0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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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이 심하지 않거나 급하게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거나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유력하게는 같은 질환으로 동네의원을 이용할 때보다 1.5~2배 이상의 진료비를 부담해야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될 경우 비급여가 대부분 사라지고 여러 정책들로 인한 본인부담률이 낮아져 대형병원 특히 빅5로 불리는 수도권 대학병원으로 환자들이 더 많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세부계획을 기획하고 있는 손영래 보장성강화추진단 팀장(사진)은 지난 10월 19일 예방의학회 학술대회를 비롯해 여러 토론장에서 문재인 케어 성공의 정책적 변수로 ▶지불체계 ▶의료전달체계 ▶자원체계 ▶건강검진 및 예방과 같은 헬스 프로모션을 꼽았다.

그리고 일련의 변수들 하나하나가 보장성 강화와 같은 거대한 논쟁의 집합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전달체계와 자원배분에 집중해 전면적 또는 부분적 개선방안을 연내 수립하기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구체적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증질환 관련 진료수가를 올리고, 만성질환 및 질병예방을 위한 상담료를 신설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경증질환 및 만성질환 관리가 지속적으로 원활히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대신 병원급 의료기관의 역할을 세분화하고 급성질환으로 인한 입원이나 요양이 필요한 경우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본인부담률을 최대 90%까지 높여 경증질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으면 부담을 느끼도록 해 선택을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병원에서는 중증질환이나 희귀ㆍ난치성 질환에 대한 집중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질환치료에 대한 수가를 높이는 등 의료기관의 규모별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질환별 접근성을 보다 엄격히 제한해 환자 쏠림으로 인한 폐단을 함께 막겠다는 취지다.

만약 일련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주치의처럼 지역 환자들을 관리하다 입원 진료가 필요한 경우 병원으로, 중증질환이 의심되면 종합병원급 지역거점이나 권역별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의뢰하고, 치료 후 회송 받아 다시 관리하는 형태의 전달체계가 확립된다.

하지만 의뢰-회송 체계확립을 위한 별도수가나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 요인이 필요한데다 환자가 원하는 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장 기능재정립으로 인한 수익구조의 변화에 의료기관의 동참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지금 상태로 가면 공멸” vs “급하지 않다. 천천히”

서울대학교 김윤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의 상황을 ‘무정부적 상태’라고 규정했다. 환자는 별다른 제약 없이 종합병원이든 상급종합병원이든 원하는 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쏠림이 발생하고, 의원급은 환자이탈로 인한 수익감소에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악순환이 발생하지만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기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다.

이에 김 교수는 1일 대한병원협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지금 상태로 가면 공멸한다. 수요는 계속 늘지 않고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진료량을 늘리거나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하는 전달체계는 의료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공존의 방향으로 개선돼야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진수 병협 보험위원장을 비롯한 병원계 관계자들은 전달체계 개편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보장성 강화와 연관된 문제지만 개편의 여파와 기능정립 과정에서의 파급력이 커 이를 준비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인제대학교 이기효 보건경영학과 교수는 급진적인 급여화 정책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며 본인부담률 증가라는 금전적 부담만으로 환자들의 대학병원행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개인이 홀로 운영하는 의원에서 만성질환 관리가 어려운 점을 들어 중소병원으로 만성질환관리기능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흔들리는 전달체계, 의료계 ‘폭망’하지 않는 길은?
이 가운데 서울대병원 권용진 공공의료사업단장은 국내 의료환경에서 진정한 의미의 의료전달체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역할을 분명히 나누고 병원들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개혁에 가까운 변화와 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와 국민, 의료계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달체계의 핵심은 환자들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와 의료인 간의 신뢰라고 강조하며 환자가 의원을 믿고 본인의 건강관리 전반에 대해 맡기며 의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의원은 상급종병 등으로 진료의뢰를 보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변화의 전면에 서있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이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는 현행 50개로 분류된 경증질환을 200여개로 확대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정부도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시민단체 등과 1년 6개월 여간 운영한 의료전달체계 개선협의체 논의를 마무리하고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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