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길을 묻다] "전공의 폭력 사태, 수련 시스템부터 고쳐야"

[의사의 길을 묻다]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

기사승인 2017-11-0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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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길을 묻다]

전공의 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인술과 봉사를 다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할 만큼 전공의들의 이면은 상처로 얼룩져있었다. 전공의가 진단하는 전공의 폭력문제 해결책은 무엇일까.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전공의 폭력사태가 연달아 일어났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전공의 폭력은 계속 있어왔던 문제다. 그 동안 용기를 내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있어왔고, 그 안에서 해결을 향해 가는 것 보고 참고 있던 전공의들이 다시 용기를 내고 있는 것 같다. 통계로 말씀드리면 작년 한해 전공의협의회가 받았던 민원 200건 정도다. 이중 폭력이나 성폭력 25건이었다. 또 올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80%의 전공의가 폭언에 노출돼있다고 응답했고, 30%가 신체적인 폭력, 그리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한 전공의도 30%에 달했다.

-그 동안 전공의 폭력 사건들은 어떻게 수습됐나.

전공의 대부분이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려워한다. 피해자 보호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폭력 민원을 준 피해자 상당수가 중간에 연락두절이 된다. 즉 피해자들이 결국 시스템 내로 숨어들거나 수련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저희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때 각 병원이 책임지도록 하는 체계를 보건복지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과계 폭력이 더 심하다는 인식이 있다.

흔히들 수술하는 과에서 그런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충격적 민원은 특정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과에서도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얼마 전에 나온 수술 중 폭행 동영상 때문에 외과에서 폭력이 심하다는 인식이 강화된 것 같다. 상하관계 문제라든지 도제식 문화를 많이 이야기한다. 도제식 문화는 교육의 한 패턴일 뿐이다. 같은 도제식 교육을 채택하고 있지만 외국의 사례와 다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폐쇄적인 문화와 유례없는 착취가 일어나고 있다. 전공의 수련시간이 세계 1위에 달한다. 근본 원인은 구조적적인 문제라고 본다.
 
-전공의 폭력의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련병원에서 막강한 상하관계가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전공의 수련의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의를 만들어서 국민 앞에 내놓을 것인지에 대한 역량 기준이 없다. 수련과정의 교육책임을 전공의에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전공의가 어떤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알아서 잘하는 수밖에 없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논문이 필요한데 전공의 혼자 논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달해야 하는 기준은 있지만 교육에 대한 수련기관의 책임은 없고, 피교육자에게만 배울 의무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전공의들은 부당한 폭력에도 참을 수밖에 없다. 전공의 수련목표와 의무를 명시한 교육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
 
-피해자들의 수련병원 이동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옮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병원장에 이동수련을 신청하고, 병원이 해당 전공의를 받을 타 병원을 모색한 후 매칭이 되면 옮기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최근 5년 동안 폭력이나 성폭력 문제로 이동수련이 이뤄진 적이 한 차례도 없다.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동수련 승인을 소속 병원장이 아닌 보건복지부 내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지도전문의 자격부여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병원장이 1년 이상 근무한 전문의 중에서 지도전문의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도전문의 수를 병원별 전공의 정원을 배정할 때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폭력의 가해자가 다시 병원에 돌아와 지도전문의 자격을 얻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폭력의 가해자인 사람은 10년 정도 지도전문의 자격을 박탈하거나, 최소한 전공의 정원 배정에 고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이 되풀이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 폭행 병원에 의료질평가지원금 1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교수 한 분이 하루 외래진료를 쉬면 1억정도 손해가 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1억 때문에 병원이 폭력문제 해결에 나설 이유가 없다, 턱없이 적은 패널티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1회성의 조치뿐만 아니라 실제 수련환경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건 발생 이후 2차적 가해는 없는지, 보복성 가해는 없는지 확인해서 개선됐다면 삭감비용을 환수해주는 등 사후처리가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나

전공의들의 폭력 피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된다. 잔뜩 폭력을 당한 전공의가 환자를 잘 볼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환자를 위해서 실수한 전공의에게 화를 내거나 조금 때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폭력은 성인 간에는 통용되지 않는 불합리한 방식이다. 또한 이러한 강압적인 방식은 전공의들이 더 배우거나 질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다. 복지부의 대책 마련도 절실하고, 의료계의 자정도 필요하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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