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공방 속 표류하는 달빛어린이병원

공정위 최대 과징금 메긴 사건에 무혐의 판단한 검찰… 수수방관 '복지부'

기사승인 2018-01-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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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대전제는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 만들기’다. 하지만 새 정책을 만들어 도입하기에 앞서 기존의 제도를 잘 운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야간 취약시간대 소아·청소년 건강을 확보할 목적으로 시작한 ‘달빛어린이병원 시범사업’이다. 

달빛어린이병원 시범사업은 2014년 갑작스러운 소아 경증환자의 질환에 대응하고, 이들이 야간 응급실을 이용하며 뇌출혈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응급 혹은 중증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치료가 늦어지는 응급실 과밀화 현상을 방지하고자 도입됐다. 


하지만 사업은 제도화되지 못한 채 4년째 표류하고 있다. 심지어 소아청소년과를 위시한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이뤄져야 함에도 개원가 의사회와 사업을 맡아 운영해온 보건복지부 간의 충돌은 법정공방으로까지 번지며 난항을 겪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가 사업취소 요구, 징계방침 통보, 온라인 커뮤니티 접속제한 등의 방법으로 달빛어린이병원 사업 확대를 방해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혐의로 과징금 최고액인 5억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사건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2월 29일 소청과에 적용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죄 혐의 없음’으로 판단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공정위가 주장한 방해가 사업 참여 선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소청과의 행위에 크게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고 일부 강제적 조치가 있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죄를 묻기에는 그 정도가 미미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소청과의사회는 “의사회가 사업자단체로 달빛어린이병원 참여 병·의원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사업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정위에 고발한 복지부의 일방적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며 사업실패의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공정위의 처분에 대한 적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면 공정위가 죄질이 심각하다며 과징금 최고액을 메긴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라며 “공정위의 처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반면 공정위와 복지부는 소청과의 주장에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검찰의 판단이 당시 공정위의 처분이나 시범사업에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공정위는 “항소여부는 논의 중이지만, 형법의 경우 죄를 묻는 과정에서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5억원의 과징금 처분은 합당한 결정이었으며 관련해 소청과에서 제기한 행정처분 취소청구소송은 검찰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지어 복지부는 사업 및 소송에 관한 문의에 대해서도 소관이 아니라는 듯 응대를 하지 않았다. 문제될 것이 없는데다 더 이상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해 초 시범사업 운영지침 등을 변경하고 신청과 심사, 지정 등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했다. 이후 홈페이지 등에서 달빛어린이병원 관련 광고 및 안내사항 등을 없앴다. 더구나 응급의료과 업무분장에는 달빛어린이병원 관련 사안이 삭제된 상태다. 


◇ 사라져가는 달빛어린이병원, 멀어지는 어린이 건강

이 가운데 달빛어린이병원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19곳이던 참여기관 중 2곳이 최근 사업을 포기했고, 1곳은 철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분포도 수도권을 제외한 충청북도, 대구, 경상북도, 제주가 1곳씩이고, 경상남도 2곳, 부산 3곳이 전부다. 전라도와 강원도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없다.

분명 지난해 10월에만 해도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수가방식으로의 전환에 따른 달빛어린이병원 운영 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인건비 등 의료기관 운영 또한 수가를 충분히 책정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꾸준히 참여기관이 늘고 있으며 관심을 갖고 참여를 준비하는 의료기관도 많은 것으로 조사된다. 간호인력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참여가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복지부가 장담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예견된 바와 같이 관련 의료기관들은 이전 정책지원금 지급 당시에 비해 수가시범사업 전환 후 운영에 어려움이 더욱 커져 달빛병원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안타깝지만 포기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일부 달빛어린이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닌 응급실 레지던트(전공의)가 진료를 하다 적발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고, 당초 정책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제도 변화 및 운영이 일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 소청과의사회는 “임상현장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사업 자체의 모순으로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며 “엉망진창인 사업으로 크게 별질됐다. 복지부는 일방적이고 구먹구구식의 무리한 사업 강행과 참혹한 결과를 책임있게 반성해야한다”고 맹비난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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