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논란 그 이후…'케모포비아'부터 '성별 인식차' 확인도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가져온 변화의 물결

기사승인 2018-02-07 0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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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박은주(25, 가명)씨는 요즘 온라인 쇼핑몰로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한다. ‘유기농’, ‘순면’같은 문구에 눈이 간다. 유명 브랜드보다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유기농’ 제품을 주로 구매하지만 무엇이 더 안전한 선택인지는 모른다. 박씨는 수험생 시절 면생리대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 그는 면생리대가 몸에 좋은 건 알지만 다시 핏물 빨래를 하기는 싫다고 했다.

#‘생리대 위해성 없다’는 보건당국의 발표를 한지호(27,가명)씨는 믿지 않는다. 한씨는 실제로 특정 생리대를 사용하고 생리양이 줄어든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씨는 “내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데 어떡하겠느냐”며 “그나마 괜찮았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우(31,가명)씨는 생리컵을 사용한지 1년 정도 됐다. 이씨는 호기심으로 생리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생리컵을 ‘공부’했다며 이제는 자신이 지인들에 ‘생리하는 느낌이 안 들어서 좋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며 강력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가 발표한 생리대 유해물질 실험 결과로 국민들은 한동안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에 시달렸다. 이후 보건당국이 자체 안전성 검사를 통해 해당 생리대의 인체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여성들의 인식은 이전과 달라졌다. 생리대 논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2월 국내 생리대 모든 제품에서 건강상 위해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진행한 1차 조사에 이어 국내 유통되는 일회용 생리용품(666품목)과 기저귀(370품목)에서 검출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의 인체 위해성을 분석한 2차 조사결과다.

과학계도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불러온 논문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독성화학물질 전문가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과장된 논란’이라고 진단한다. 어설픈 연구와 대응, 그리고 언론의 부풀리기가 전 국민적인 케모포비아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김영미 경희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도 “해당 논문의 실험방법과 결과의 타당성은 과학자로서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수백 종의 화학물질을 명확한 기준없이 하나로 묶어 휘발성유기화합물(VOC)로 통칭한 것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다. 특히 “해당 실험결과의 오차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며 “어떤 의미를 도출하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교수는 “생식기는 다른 피부보다는 화학물질에 취약한 것은 맞다”며 “실제로 생리대를 접촉했을 때 어떤 물질이 어떻게 유해한지 확인하려면 장기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서 한씨의 사례처럼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의 팩트체크를 신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여성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면생리대와 생리컵이 대체재로 부상했고, 기존의 유명 브랜드 제품보다는 ‘자연주의’를 표방한 중소업체 제품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생리대 논란 그 이후…'케모포비아'부터 '성별 인식차' 확인도
특히 생리컵의 경우 올해부터 국내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생리컵은 의약외품 허가절차‧사례가 없어 국내 판매 금지 품목으로 단속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생리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입·제조 관련 허가 절차가 마련됐으며, 국내 첫 허가사례도 나와 수입제품인 '페미사이클'이 조만간 시장에 나온다. 국내 제조 업체들도 앞다퉈 식약처 허가신청을 내고 출시경쟁에 나섰다. 

생리컵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이맘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생리컵에 대한 관심을 부추긴 면이 있다”고 평했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은 ‘생리’에 대한 성별 인식 차를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앞선 사례에서 박씨는 “생리대 논란 당시 엄살이 심하다는 남자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생리를 참을 수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어서 놀랐다. 오히려 평소에 운동을 하라며 훈계하는 어른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생리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생리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되면서 남성들이 기존 지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존의 성교육이 생식 위주의 교육이었다면 앞으로는 인권에 기반한 성평등 교육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며  “남성중심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해 여성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성중심의 지식체계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성의 반성과 자성, 자기 경험을 들여다보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중‧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의 청원이 국민 21만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양성평등 교육을 통해 성별 이해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국민 20만명 이상 동의한 청원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기로 한만큼 청와대의 답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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