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은 유일한 보도여야지"

기사승인 2018-06-03 0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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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유재순(60)씨는 일본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르포작가다. 현재 일본 정세에 가장 정통한 언론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유씨는 취재 중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치료비를 치를 돈이 수중에 없었다고 했다. 세금을 못 낼 정도로 힘겹게 언론인 생활을 이어가는 그에게 지인들은  '버티는 게 경이롭다'며 혀를 내두른다. 타고나길 독한건지, 기자로서 '노 타협'을 부르짖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언론인으로서 굵직한 특종을 쏟아내온 지난 세월이 고군분투의 연속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아래 문답은 지난 20154월 유씨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 

- 그러니까 '타협은 금기'라는 것인데.

홍보나 협박기사는 쓰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제안은 많았다. 언론을 하다보면 자의반 타의반 일종의 타협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 같은 사람도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언론인도 동시에 생활인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흔들릴때가 없겠나. 지난주에도 한차례 유혹이 있긴 했다. 통장을 차압당하고 병원비는 지인이 대신 내어주는 걸 보고 있자니 ‘나도 타협을 해볼까’ 싶긴 했다. 돈은 꿨다가도 갚으면 그만이다조금 부끄럽고 굴욕적일 뿐 양심을 파는 짓은 아니다그러나 홍보기사나 협박기사는 다르다.  영혼이 더럽혀진다. 그렇게되면 더 이상 복구가 안된다.

- 기자정신, 저널리즘에 충실하자는 것?

그저 성격이 그렇다.

-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는 어디에 기인한다고 보나.

참기자가 없기 때문이다. 

- 참기자는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 쓰는 기자 아니겠는가. 기사에는 사심과 욕망, 야망이 들어가면 안 된다.

- 언론은 차고 넘치게 많아요. 평가가 궁금하네요.

잘하는 곳도 있고, 과한 곳도 있다.

- 어떤 점이 아쉽나.

약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일을 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걸 하고 있다고 말이다.

- 르포르타주로 명성이 높다. 

우리 언론이 해외 취재를 하면 며칠이나 나가있나. 당일치기도 부지기수다. 그러면서 쓰긴 거창하게는 쓰더라. 뉴스>는 후쿠시마에서 일주일동안 취재를 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일본 정부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겠다더라. 후쿠시마만 해도 진짜 속살을 쓴 기자는 없다. 속살이 뭐냐면, 지인의 어머니가 후쿠시마에 거주하고 있다. 거기선 매일 한번씩 방송이 나온다고 한다. 창문을 열라는 방송이 나오면 15분 동안만 창문을 열 수 있다. 그 외에는 닫고 살아야 한다는 거다. 생각해보라.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사는 그 느낌은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어떤 특파원도 이런 기사를 쓴 적은 없다.

80년대 잡지사에서 기사를 쓸 때였다.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인 시절이었다. 그런데 기사만 쓰면 기무사에서 통째로 들고가더라. 죽어라 취재는 하는데 기사를 안 실어 주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우연히 타매체 기자가 난지도에 간다기에 따라갔다. 충격을 받았다. 난지도 거주민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살고 있었다. 기사를 썼고 그것 때문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이런 기사를 쓴 의도가 뭐냐고 추궁하더라.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없었다.

기자가 정부 홍보 기사만 써야하냐고 편집장과 대판 싸우고는 짐 싸들고 나왔다. 집에는 친구집에 간다고 하곤 쓰레기 매립지에 있는 교회에서 석 달을 살았다. 그때 경험을 <여성동아>에 기고했다.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무엇보다 높은 현장성 때문이었다. 이렇게 외부에선 칭찬이 쏟아지는데 정작 난지도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썼다고 욕을 하더라. 에라, 다시 가서 18개월을 살고는 소설로 써버렸다. (‘난지도 사람들(1985)’, ‘쓰레기섬에서 살다(1986)’)

- 수차례 특종을 한 것으로 안다. 본인이 생각하는 특종은 무엇인가. 

특종은 유일하게 한 사람만 보도한 것이어야 한다. 먼저 보도했다고 특종이 아니다. 난 일본의 역대 수상을 전부 인터뷰 했다. 이건 자랑이 아니다. 일본에 사는데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다른 특파원은 섭외부터 애를 먹더라. 당시 모일간지가 총리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거절당했다. 이후 그 매체 기자가 나 같은 프리랜서와는 인터뷰를 하면서 왜 자긴 안 해주냐고 항의를 했다더라이런 건 특종이 아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다. 그 수상 인터뷰를 나 혼자 했나. 수십 명이 했다. 그 기자만 못나서 못한 것뿐이다.

그는 대작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머지않아 그의 대작을 읽게 될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현재 연성 기사와 받아쓰기가 횡행하는 디지털 공해의 시대. 대작은 커녕 졸작도 내놓지 못한 나는 여전히 그의 대작을 기다린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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