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담배업체 진실게임에 눈 가려진 소비자

기사승인 2018-06-0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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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담배업체 진실게임에 눈 가려진 소비자경마가 시작되기 전, 기수들은 말에 차안대(遮眼帶)를 씌운다. 말이 측면이나 후면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정면만을 볼 수 있도록 한 기구다.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여부에 대해 보건당국과 담배업계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진실게임을 이어가는 동안 정작 국민은 소외되고 있다.

7일 보건당국은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은 일반 담배와 유사한 수준으로 검출됐다.

아이코스와 릴 등 2개제품의 경우 타르 함유량이 일반담배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다만 벤조피렌 등 WHO가 지정한 9개 발암물질은 일반담배보다 훨씬 적은 양만이 검출됐다.

보건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 등 외국 연구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근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그간 필립모리스 등 제조·판매업체들이 일반담배 대비 90% 이상 유해물질이 줄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보건당국은 또 궐련형 전자담배를 ‘완전히 새로운 담배’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불로 연소시키는 방식이 아닌 ‘찜’ 형태인 만큼 궐련형 전자담배가 어떠한 물질을 생성하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필립모리스의 분석방법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국가에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이러한 보건당국이 실험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식약처의 분석결과는 유해물질이 적게 나온다는 자사 연구결과를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였다.

일반 연초보다 타르가 더 많이 검출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타르는 불을 붙여 사용하는 일반담배에서 발생하는 것인 만큼 연소가 발생하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잘못된 실험에서 나온 결과는 당연히 잘못될 수밖에 없다 는 ‘독수독과’의 입장이다.

특히 WHO가 지정한 9가지 유해성분이 대폭 감소한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WHO가 지정한 9가지 유해성분은 벤조피렌과 니트로소노르니코틴·니트로소메틸아미노피리딜부타논·포름알데히드·벤젠·아세트알데히드·아크롤레인·일산화탄소·1,3-부타디엔 등이다.

연구결과에서 1,3-부타디엔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으며 벤젠도 연초의 0.2~0.3% 수준에 불과했다. 벤조피렌과 포름알데히드 등 기타 발암물질도 연초의 1.6~28% 정도인 만큼 자사가 그간 주장해온 ‘유해물질 감소’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즉 보건당국과 제조업체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연구내용만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표준실험규격이 없는 만큼 서로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보건당국은 발암물질 감소보다는 타르에, 제조·판매업체는 타르보다 발암물질 감소에 초점을 맞췄다. 차안대를 쓴 경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이번 연구결과에서도 국민들은 ‘정말 궐련형 전자담배가 연초보다 나쁜지, 나쁘다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수 없게 됐다. 국민의 눈에 씌운 차안대는 보건당국과 제조업체가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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