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당국이 방어진료를 부추기나”

의사협회, 의료사고 100% 의료진 배상판결 문제 지적

기사승인 2018-06-18 03: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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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당국이 방어진료를 부추기나”
평소 건장했던 한모(66)씨가 식물인간이 됐다. 동네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받던 중 의사 A의 실수로 지름 5㎝가량의 천공이 생겼고, 병원장 B씨가 수습에 나섰지만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한 씨는 인근 상급종합병원로 옮겨졌고, 의사 C씨의 시술도중 심장이 멈췄다. 문제는 C씨가 호흡을 유지하기위해 기도삽관을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해 20여분간 뇌로의 산소공급이 차단됐고, 결국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에 한 씨 보호자는 의료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의사 3명의 과실을 100% 인정해 3억8000만원을 일시금으로 배상하고 한 씨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통상적으로 의료소송의 경우 의료진의 직업적 특수성과 위험부담을 고려해 책임을 경감하는 ‘책임제한’의 법리를 적용해 30~70%의 책임만을 인정하는데 반해, 한 씨 사고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의료진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

재판에 나선 서울북부지법 민사12부(부장 김양호)는 “한 씨가 기존에 대장질환이나 지병이 없었는데 의료진 과실로 천공을 입었고, 추가검사 도중 쇼크를 일으켜 최종적으로 뇌손상을 입었다”면서 “피고들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을 두고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산부인과의사에 대한 실형선고나,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을 포함해 이번 재판결과는 선한 행위를 기반으로 한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손해의 공평분담이라는 의료사안에 대한 이해가 무시됐다는 설명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열악한 여건 하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수술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판결”이라며 “의사들로 하여금 가능한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진료만 하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의료진에게 100% 책임을 지운다면 어느 의사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 하겠느냐”면서 “위급한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불안감에서 위축된 심정으로 환자를 대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의사라도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는 상황에 대해 예견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 의도가 선한데다 부정적 결과 또한 의료행위의 침습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만큼 공평한 책임의 분배라는 법리가 생겼고, 이를 무시한 판결은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의사협회는 유사한 판결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향후 법조인 양성교육에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이에 따른 위험성을 인식하도록 하는 의학관련 정규교육의 추가를 정부와 법조계에 요구했다.

또한, 의료행위의 책임제한 법리를 독자적으로 배척한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 바로잡힐 것이라고 확신하며 기타 의료분쟁 소송 과정에서 사법당국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이 내려지길 바란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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