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아이 못 낳으니 이혼시켜야겠어요"

"아이 못 낳으니 이혼시켜야겠어요"

기사승인 2018-07-17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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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①] ‘남녀’라면서 욕할 때만 ‘연놈’?에 이어 계속)

① “대를 못 이으니 이혼시켜야겠어요.

② “사랑받지 못한 자는 화를 낼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게 먼저 아니냐. 꼭 남 탓을 하지, 모자란 남자들이. 고추 잡고 반성하든지, 목숨을 끊든지.”

③ “너 꽃뱀이지?”

④ “엄마 왜 그래요? 아니 대체 결혼이 뭔데. 우리 집 딸들 결혼 안 하고 있어서 어디 하늘에 금 가고 있대요?…(중략) 결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야? 결혼이 그렇게까지 절체절명 반드시 꼭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의 절대적인 과제냐고.”

네 가지 예문 중 하나는 23년 전 드라마 대사다. 나머지는 최근 몇 년 사이 전파를 탄 ‘문제’의 발언들이다. 어떤 예문이 오래전 나온 이야기일까. 

정답은 4번이다.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사회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집안의 장녀(김윤경 役·배종옥 분)의 대사다. 물론 십수 년 전의 드라마가 현대 사회의 세태 온전히 그릴 수 없다. 그 시절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윤경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외출에 나선 극 중 동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직장여성으로 상당히 튀기도 할뿐더러 너처럼 너 자신을 성 상품으로 내놓고 다니면 주변에 여자를 성으로만 보는 남자만 끌어모을 위험이 있어.”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거나 성범죄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발언이다. 당시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기획②] 현재는 어떨까.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성 역할은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앞서 언급된 1번 예문은 지난해 5월 방영된 ‘아임 쏘리 강남구’ 드라마 대사다. 며느리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이혼을 종용한다. 여성을 그저 출산 수단으로 보는 고정관념이 담겼다. 2번 예문은 2016년 방영된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에 등장한 성희롱 대사다. 당시 큰 논란이 일어 제작진이 사과에 나섰지만 정작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제없음’ 의견을 내 대중의 혼란을 가중했다. 3번 예문의 경우 지난 5월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 나온 발언이다.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발언으로 시청자의 불쾌감을 유발했다. 

성차별 언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지만, 아직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특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렇다. 우리는 지금도 ▲남존여비, 남아선호, 여성비하, 가부장제 강화 ▲사회적 직업을 가진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 ▲사회적 직업과 권력을 가지지 못한 남성 무시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취급하는 등의 부자연스러운 전통적인 성 역할 수행 표현에 젖어 있다. 

크면서 흔히 듣고 자란 ‘여자가 무슨 공부야’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 ‘여자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여자가 따라야 술맛이 좋다’ 등의 말에는 여성에 대한 전형적이고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

물론 남자라고 다르지 않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왜 이렇게 힘이 없냐’ ‘남자가 그것도 못 해’ ‘남자는 가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등의 표현은 남성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거나 당위성을 따르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조롱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성 역할에 따른 차별은 각계각층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여성들이 행동거지라든가 말하는 것 조심해야 한다” “여자들 일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등의 언급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9월,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성 정책 토론회에서 “여자들이 국회에 들어오면 잘 싸운다” “여자들은 눈치도 안 보고 잘 싸우더라” 성차별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는 교내 학생들에게 ‘강의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여성 혐오적 말’을 제보받아 대자보를 만들었다. 18개의 문제의 발언 중에는 “여자는 똑똑하면 남자한테 인기가 없어” “여자들은 똑똑해질수록 눈이 너무 높아져서 배우자의 풀(pool)이 좁아진다” 등의 차별 표현이 난무했다. 

대중매체는 어떨까. 단편적이고 압축적인 메시지 전달로 많은 이의 욕구를 자극하는 광고에도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표현이 넘쳐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이 지난 4월1일부터 같은 달 7일까지 457편의 광고를 모니터링한 결과 성차별적 광고는 성평등 광고에 비해 2배가량 많았다. 성차별적 광고의 경우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광고가 23편(63.9%)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의 주체성 무시·남성 의존성향 강조는 5편 (13.9%), 외모지상주의 조장 및 여성의 성적 대상화·선정성은 4편(11.1%)이었다. 특히 돌봄·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의 경우 남성(40.8%)보다 여성(59.2%) 등장인물이 다수였다. 반대로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여성(36.2%)보다 남성 등장인물(63.8%)이 많았다. 

전문가는 성 역할에 따른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신원 양평원 교수는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에 대한 규정이 고착화되면 깊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차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교수는 또 “문제 해결의 방안 중 하나는 성별 역할·입장·경험 등을 고려해 성차별 요소를 감지해 내는 ‘성인지 교육’”이라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 폭력적인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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