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과 창고에 쌓여만 가는 추정 발암 고혈압약

서로만 바라보는 식약처-제약사, 2차 발표 발사르탄 품목 회수 안 돼

기사승인 2018-08-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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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과 창고에 쌓여만 가는 추정 발암 고혈압약

발암물질을 함유한 고혈압약들이 제대로 회수 후 폐기되지 못한 채 약국이나 의약품 유통업체 창고 등에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추가 판매중지조치와 함께 의약품 교체처방을 유도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대응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7일 약 18만명이 복용하는 고혈압 치료제 219개 품목 중 115개 품목에 대한 판매 및 제조 중지조치를 내렸다. 이어 국내에 수입 또는 제조되는 모든 ‘발사르탄’ 품목 86개에 대한 수거 및 검사를 진행해 지난 6일 59개 품목을 추가로 제한했다. 

일명 ‘발사르탄’ 사태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중국 제지앙 화하이社가 제조한 원료의약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통칭 ‘발사르탄’에 2급 발암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추가 제한조치를 취하며 “(전수조사 중간결과에서) 화하이社와 다른 공정으로 제조되거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일부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서 NDMA 잠정관리기준을 초과한 것을 확인했다”며 “이를 제료로 만들어진 완제의약품 59개 품목을 잠정적으로 판매중지하고, 처방을 제한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직접 복용하지 않고 단순 노출되는 것으로는 큰 위해가 없고 발암물질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기는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의약품이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수·폐기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앞서 1차 발표 후 의료기관과 약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보건당국의 빠른 전파로 지난 7일까지 약을 다시 처방 받아 교체한 이들은 약을 복용중인 것으로 확인된 17만8500여명의 91%인 16만2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약을 모두 복용한 6600여명을 포함하면 약 95%가 약을 바꿨다.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재처방률 산정방식에 따라 미처 약국에서 전산입력을 하지 못했지만 교품을 받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해당 고혈압약을 처방받은 대부분의 환자가 약을 교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발 빠른 교품이 이번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식약처가 해당 의약품을 생산한 제조사들에게 판매 및 제조 중지조치를 내리면서 회수명령은 따로 하지 않아서다.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제조사들은 현재 식약처의 추가고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발사르탄을 원료로 하는 완제약을 생산하는 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가 잠정적으로 판매와 제조를 중지해 이후로는 생산이 중단된 상황”이라면서도 “의약품 회수명령은 따로 나오지 않아 공식적으로 해당 제품에 대한 회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완제약을 위탁판매하고 있는 한 제약사 관계자도 “병원에서 재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바꿔주고 거래하는 유통업체들을 통해 일부 반품을 하고 있지만 제약사 차원에서의 조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도 식약처의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제조·판매 업체에서의 회수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약과 재처방 받은 약과의 1대1 교환이라는 보건당국의 교품기준에 따라 환자와 제약사 사이에 낀 약국과 의료기관, 도매유통업체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큰 액수가 아닌 만큼 일반종량제 쓰레기봉투에 판매 중지된 약을 버리고 새롭게 처방을 받는 경우들도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약사회와 보건복지부는 “1대1 교환을 해야 관련 수가를 받을 수 있어 버리라는 말을 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도 2차 피해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의약품 회수를 총괄하는 식약처는 현재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2차 발표 당시 판매중지 및 처방제한 폼목으로 지정된 약들의 경우 국민의 우려가 커 교환조치가 내려졌지만, 아직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는 분석 중”이라며 “의약품 회수절차를 진행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의약품 교환과 관련해 약이 좀 쌓이는 문제는 있지만 어차피 (교품에 따른 조제 등에 대한) 급여가 나가니 큰 손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의료기관과 약국, 유통업체 등의 직간접적 피해에 대해서는 일부 공감하며 “회수를 어떻게 진행할지 검토해 안을 만들겠다. 며칠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의학계 관계자는 “NDMA의 경우 2급 발암물질로 오히려 담배나 술이 몸에 더 직접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며 “복용을 하더라고 신체적으로 단기간에 큰 위해를 가하는 물질은 아니기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히려 “고혈압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더 큰 위해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약을 임의로 중단하지는 말고 조속히 처방받은 약을 가지고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방문해 교체여부를 확인하고 교환받으면 된다”고 당부했다. 

복지부는 기존에 처방받은 병·의원 또는 약국에서 의약품의 재처방 및 재조제시 1회에 한해 환자본인부담을 면제받을 수 있으며, 가지고 있던 발사르탄 고혈압약을 약국에 반납할 경우 그에 한해 재처방이 이뤄진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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