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그녀, 사라수경의 와인 사랑

“와인은 사람 잇는 효과적 매개체”… ‘와인 외교’ 모토 수드비 사라수경 대표 ‘딥(Deep) 인터뷰’

기사승인 2018-08-14 0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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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와인을 생명의 물, 혹은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말한다. 강렬한 태양과 토양, 그리고 기후가 빚어낸 포도는 사람의 손을 거쳐 이 매혹적인 술로 거듭난다. 비단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해도 와인까지 거부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데 와인만큼 빼어난 윤활유는 없다. 그리고 와인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할 때가 있다. 오죽하면 ‘와인외교’라는 말까지 나올까.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본 지난 4월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나라의 한 작은 회사는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위해 와인을 내놨다. 이 회사는 ‘수드비(Soo de vie)’이고, 이들이 선보인 와인은 ‘봄이’였다. 사명도 낯설고 이들이 한다는 와인 큐레이션도 쉽사리 이해되진 않는다. 궁금한 것 많은 기자는 수드비의 대표 홍수경씨(31)에게 질문 여러 개를 전자우편에 담아 보냈다.

약 일주일후인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역삼에 위치한 수드비 사무실내 회의실에서 홍 대표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명함에는 ‘사라수경’이라는 이름이 함께 있었다. 두 개의 이름.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한불의 문화를 모두 접해왔다. 파란만장하진 않아도 퍽 다이나믹했던 그의 서른 한 해가 두 시간 남짓 인터뷰에 모두 담길리 만무하다. 기자는 홍수경 그리고 사라수경이란 인물이 지닌 고민과 상처, 그리고 꿈을 살짝 엿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 와인은 문화

- 수드비가 무슨 뜻이죠?

“직역하면 생명의 물이란 뜻인데, 와인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물이란 의미로 붙였어요.”

- ‘와인 큐레이션’을 한다고요, 근데 그게 뭐죠?(웃음)

“큐레이션은 스토리텔링이죠. 저흰 와인 접근성을 낮추고 싶었어요. 와인은 문화니까요. 그러려면 와인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야 했죠. 우린 와인을 즐겨 마시지만 정작 그 와인을 누가 만들었고 와인에 어떤 스토리를 숨겨져 있는지 들을 기회가 전혀 없어요. 우린 와인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와인 브랜딩과 마케팅을 ‘와인 큐레이션’이라고 명명한거죠. 상황과 사람에 맞춰 그에 걸맞는 와인이 잔에 흐르면 정취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이 와인을 맛본 이들의 기억도 달라지고요.”

- 국내에서 와인 큐레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은 많지 않죠.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미국 워싱턴 DC에서 정치외교를 공부했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했어요. 제가 본 외교 행사에는 늘 와인이 있었어요. 또 제 고향이 프랑스 보르도라 와인은 제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기도 했고요. 와인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 사이에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와인 시장은 수입과 유통·판매가 전부나 마찬가지에요. 그 중간에 어떤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와인을 먼저 접해보고 와인을 친근하게 접근하게 전하면 어떨까.”

- 아직 소규모이긴 하지만 기업이니까 매출 이야기를 해보죠. 돈은 기대한 것 만큼 벌고 있나요?

“아직 회사가 성장하는 중이라 만족스러운 매출이 나온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늘고 있어요. 현재 매출은 와인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어요. 국내 와인 수입업체로부터 콜도 많고요. 특히 우리의 비디오 마케팅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와인이 어려운 구매자들에게 쉽게 우리말로 풀어 설명하는 와인 영상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 홍수경 대표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와인 스토리를 전하던데, 원래 무대 체질인가요? 아니면 나름의 전략?

“지난달부터 ‘사수와설’이라고 매일 30초 분량의 와인 설명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고 있어요. 매일 꾸준히 진행하다보니 특히 인스타그램 반응이 뜨거운 것 같아요. 재밌는 건 전 창업 전에 전혀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은 카메라 앞에서 즐기는 제 모습을 보면 ‘사실은 무대 체질’ 같기도 해요(웃음).”

- 와인·한식 ‘궁합’을 소개하는 영상이 꽤 흥미롭더군요.

“외국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자는 차원에서 진행했어요. 와인과 김치·청국장·제육볶음과의 궁합은 놀라우리만치 좋다는 건 모르셨죠? 한국에서는 와인에 대한 접근성, 외국에서는 한식에 대한 접근성을 전하기 위한 ‘빅픽쳐’랍니다(웃음).”

- ‘와인외교’를 강조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외교 커뮤니티를 통해 전하고 있지만, 거기에 국한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와인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메신저라고 봐요.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외교라 할 수 있겠죠. 와인외교는 와인을 매개로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사무적으로 명함을 돌리면서 대화하는 게 아니라, 와인을 통해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 주한 외국 대사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들었어요.

“미국, 프랑스, 독일, 콜롬비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대사관과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외교관 지인들로부터 여러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고 있고요. 수드비의 봄이 와인도 이 인맥들에게 소개되었고, 실제로 와인 행사를 열었을 때, 각국의 외교관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어요.”

- 그렇지만 첫 시작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죠?

“고민은 있었어요. 과연 국내 와인 수입회사들이 우리에게 와인 마케팅을 맡길까. 이제 막 시작한 회사인데 신뢰할까.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리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죠. ‘저는 이런 사람인데, 우리 와인 행사에 와주세요. 우리가 하는 걸 봐주세요’라고 말이죠. 행사에 참석한 한 수입사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다음 행사에는 그들의 와인을 소개해 달라고 말이죠. 기뻤습니다. 수드비의 사업아이템이 틀리지 않다는 게 증명된 거니까요.”

- 뚜렷한 경쟁자가 없다는 건 장점이자 동시에 험로가 예상되기도 합니다. 

“경쟁자가 없다는 건 좋지만 무섭기도 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긴장이 되고요. 정말 스타트업의 험난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웃음).”

- 최근 ‘봄이’ 와인을 런칭했다고요?

“첫 스토리, 첫 큐레이션 상품입니다. 봄에 탄생한 아이라고 ‘봄이’라고 지었어요. 4월 남북정상회담을 와인으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봄이 와인에는 독일 통일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통일 후로 통합된 독일적십자사가 운영한 와인 농가이기 때문에 우리와 부합하다고 봤어요. 봄 바람이 한반도에도 불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런칭했습니다.”

- 반응은 어때요?

“대량판매보다는 전략적 접근을 지향하고 있어요. 정부부처 행사에 봄이 와인이 쓰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와인 런칭 행사에 미국, 영국, 호주, 에콰도르, 콜롬비아, 유럽 상공회의소, 한독상공회의소, 한미협회, 국회 사무처, 외교부, 통일부 등에 초청장을 보냈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해 주었죠. 워싱턴 DC에서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식과 어우러지는 봄이 와인 행사도 준비 중이에요. 이후 반응이 더 좋으면 자연스레 대중에게도 전해지리라 예상합니다.”

◇ 내 이름은 사라수경, 그리고 홍수경

- 이름을 ‘사라 수경’과 ‘홍수경’ 모두 사용하던데,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 한국에서는 홍수경이고 외국에서는 사라에요. 모두 저에요. 사라라고만 하면 꼭 외국인 같잖아요. 그래서 둘 다 사용하고 있어요.”

- 유년 시절 이야기를 해볼게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프랑스에서 4살까지 살다가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15살까지 있었어요. 프랑스로 가기 전에 MTV가 개국을 했고 잠깐 비디오자키로 활동을 하다가 곧 프랑스로 돌아갔죠.”

- 무대 체질이 맞았던 거군요(웃음).

“‘끼’는 있는 것 같은데 저와 그 생활은 맞지 않았어요(웃음). 프랑스에서 1년간 고등학교를 다니다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갔어요. 거기서 아메리칸 대학에 진학해 정치외교를 공부했죠. 한미경제연구소에서 인턴십과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았고요. 동북아 정세가 제 관심사였습니다. 워싱턴 DC의 한 NGO에서 한미리더십회의를 3년동안 담당했습니다. 정책을 잘 알아야 했기 때문에 외교정책과 관련한 여러 인맥과 네트워크를 쌓았어요. 이후 하와이에 있는 퍼시픽포럼에서 2년 넘게 동북아시아와 북한 관련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 그러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일단 지루했어요(웃음). 재밌는 일을 하고 싶어서 미국 스타트업 업계를 기웃거렸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열정은 점점 말라붙는 것 같았거든요. 무작정 중국 여행을 떠났어요. 와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한국과 프랑스 어디에서 시작할까, 한다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할까 고민이 많았죠.

우연히 중국 와인 수입업체 관계자에게 보르도 와인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현장 반응도 좋았죠. 한참 중국어로 와인 설명을 하고 있는데 ‘너 왜 중국에서 이걸 하고 있니? 지금 당장 한국으로 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을 굳히고 2주 후 한국에 아예 들어왔어요. 그게 작년 7월이었고, 석달 후인 10월에 창업을 했어요.”

- 거북스런 질문일 순 있겠지만 혼혈의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장점이라면 사람들이 글로벌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와인하면 프랑스니까 문화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얼굴은 이국적인데 한국 사람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랄까? 실제로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어려움은 없나요? 

“‘너는 외국인이고 '우리'는 아니야’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아무리 시각이 바뀌었다고 해도 종종 어르신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한번은 한국어로 와인 행사를 진행했는데, 행사를 다 들은 한 참석자가 사석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느냐’고 되묻더라고요(웃음).”

- 유년시절 한국에서 살 당시에 특히 그런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4살 때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어요. 호떡을 먹고 싶어서 호떡 가게 앞에 서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한국사람도 아닌데 왜 호떡을 먹느냐면서 제 발 옆에 침을 뱉었어요. 놀라고 분이 나서 울음을 터뜨렸는데 할머니는 그저 가만히 절 보고 있더라고요. 할머니는 제게 울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제대로 이야기하고 보여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번 시장에 갔을 때 그 아주머니에게 저도 한국 사람이고 호떡을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4살짜리가 말예요!(웃음)”

- 침까지 뱉다니 그 아줌마도 참 심했네요.

“한국에서 창업을 결심한 이유 중에는 ‘보여주겠다’는 것도 아주 조금은 있어요. 프랑스계 한국인인 제가 한국에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보단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동참하고 싶었던 게 더 컸지만요. 저도 뭔가 가치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 그렇게 시작한 스타트업인데 지난 10개월 동안 고생은 톡톡히 하고 있죠(웃음)?

“네(웃음)! 인력 관리가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직원 3명뿐인 소규모 회사지만 사업도 사람이 하는 거고 돈도 사람이 만드니까 사람이 가장 중요하죠. 지금은 비록 3명이지만 앞으로 20명, 50명, 100명으로 인원이 늘어나도 인력 관리는 가장 머릴 싸맬 것 같아요. 아참!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여자 창업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꽤 신기했어요(웃음).”

- 10년 후 수드비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요? 빅픽쳐를 조금 더 공개하시죠(웃음).

“수드비는 현재 변화의 국면에 서 있습니다. 곧 우리의 ‘킬링콘텐츠’나 수익모델도 정립이 될 겁니다. 지금보다 더 뚜렷하고 진한 우리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수드비는 한국 스타트업이지만 글로벌 회사를 지향합니다. 와인 접근성을 낮추고 와인에 곁들인 한식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어요. 물론 문화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죠. 와인으로 시작하지만 와인만을 고수하진 않아요. 프랑스와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우리의 큰 비전을 실현해나갈 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 사라수경의 와인 사랑

초를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홍수경 대표가 꿈꾸는 빅픽쳐에 이르기까지 장밋빛 비단길만이 있진 않을 것이다. 목표 가까이 닿을 수도, 그 반대의 경우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게 내일 당장 회사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 바로 스타트업계 아닌가. 한 해 동안 야무진 각오와 의지, 결기로 시작한 숱한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그보다 많은 곳이 문을 닫는게 이 바닥의 현실일터다. 

여성 기업에 대한 일시적 관심이나 호의적 창업 정책은 잠깐의 호기로 작용할 뿐, 되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진짜 뒷심은  언제고 도래할 지 모르는 고난을 이들이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려있다. 명품 와인은 비옥한 토양과 훈풍으로 가득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억센 바람과 추위, 척박한 토양을 뚫고 뿌리내린 포도나무만이 최상의 열매를 맺고 깊은 향의 와인으로 거듭난다. 

서른 하나. 동갑내기 세 명이 의기투합한 수드비는 작은 회사지만 이들의 목표까지 작진 않다. 포도나무는 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반짝 반짝 빛나는 이들이 부디 명품으로 성장하길. 쉬이 맛볼 수 없는 그윽한 향을 전하길 기대해본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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