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n문화인]"희극과 비극 모두 삶의 한조각" 창원 극단 '미소' 연출가 장종도

입력 2018-08-18 09: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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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희곡작가, 배우 장종도씨

코미디언을 꿈꾸다 연극 무대로

"유쾌함 뒤에 묵직한 감동 전하고파"

연극은 극단, 극단은 식구. 좋은 작품 매진할 것

 

[편집자주] 문화예술은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라는 생각과 달리 경남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문화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대와 작품은 곧 삶이고 철학이다. 영화와 연극, 문학과 음악, 무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을 만나는 경남 문화인들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척박한 지역 문화 환경에도 불구하고 왕성히 활동하거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문화인들을 만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의 인생관을 듣고자 한다.

"연출가도 하고 희곡 작가, 배우도 해요."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린 지난 13일 오후 2시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의 한 상가 지하 1층 극단 '미소'에서 만난 연출가 장종도(34)씨가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닦으며 말했다.

부스스한 머리에 늘어진 면티를 걸친 데다 소탈한 웃음까지 갖춰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그는 사실 지역에서 몇 안 되는 희곡 작가이자 연출가다.

고등학생 때 코미디언을 꿈꾸며 연극 무대에 섰고 제대 후 극단 대표의 제안으로 연출을 맡은 뒤 이제는 희곡을 쓰기까지 이 젊은 청년은 인생 절반인 17년을 무대와 함께 했다.

지난 2015년 경남도 '차세대 유망예술인 10인'에 선정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극적인 삶이 우연에서 비롯되듯 장씨의 연극 인생도 갑작스레 시작됐다.    

"남을 웃기는 게 좋았어요." 

장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 2001년 그저 남들을 웃기는 게 좋아 개그 콘테스트에 나가려고 했다.

당시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린 것도 개그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20만~30만원이라는 비싼 학원비가 발목을 잡았다.

집에 도움을 청할 지 고민하던 순간 같은 반 친구가 읽던 극단 미소의 대본이 눈에 띄었다.

그가 친구에게 물었다.

"나도 극단 가도 돼?"

"응."

그렇게 극단 미소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듬해 그는 경남연극제에서 상연된 선욱현 작가의 '고추말리기'에 고릴라 인형으로 출연했다.

아들을 선호하는 집에서 태어나 낙태를 당한 여자 아이 혼령과 고릴라 인형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두 세마디의 짧은 대사로 혼령의 해코지를 만류하는 장면이었다.

짧은 연기였지만 장씨는 "연기 못한다고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며 "그 때는 이 연극만 끝나면 연극판은 뒤도 안 돌아보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주는 환호와 박수인 '커튼콜'을 받곤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창원여고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왔다가 장씨에게 호기심을 보인 것도 좋았단다.

연극을 이어간 계기는 그에게 쏟아진 관심 덕이었지만, 지금껏 연극 무대에 선 이유는 관객들이 배우와 연극에 대해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장씨는 수능시험을 치르고 흉가에 볕들어라는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조촐한 식사자리가 마련됐다.

그와 다른 배우, 연출가, 그리고 관객이 참석한 자리에서 관객은 그들에게 연출 의도나 배우의 생각 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장씨는 "그런 모습을 보며 관객이 뭔가 얻어가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관객의 웃음과 배우를 향한 박수보다 더 중요한 게 있구나'하는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웃음은 목적이 아닌 장치"

장씨는 지난 2010년 경남연극제에 출품한 작품인 김광탁 작가의 '아비'라는 작품으로 처음 연출에 도전하며 웃음과 감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첫 연출을 맡게 된 데 대해 장씨는 "지역 극단은 서울처럼 배우도 연출가도 많지 않다"며 "그래서 제게도 자연스레 연출의 기회가 온 것뿐이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코믹풍자극인 아비는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평생 300억원의 재산을 모은 아버지가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겠다고 해 촉발된 가족 간의 갈등을 씁쓸한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장씨는 예나 지금이나 "안 그래도 힘든 세상, 공연까지 답답하면 누가 볼까"하고 생각하지만 고민은 여기서 비롯됐다.

그는 "연극인들에게 무대는 신성한 곳"이라며 "웃음이 지나쳐 '무대에서 장난친다'는 평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경험은 웃음이 없어도 안 되고 지나쳐서도 안 되는 외줄타기와 같았다.

장씨는 "코미디라고 웃기기만 하고 슬픈 연극이라고 계속 울리기만 해선 안 된다"며 "유쾌한 상황 뒤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씨에게 웃음과 감동, 미소 짓는 가면 뒤의 슬픔은 여전한 숙제다

    [경남n문화인]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그의 작품에는 유독 불편한 이웃, 불편한 상황에 대한 소재가 등장한다.

첫 희곡 작품인 '꽃신(2013년作)'에선 치매 걸린 어머니와 딸이, 연출작 '노답청춘(2015년作)'에선 치매 걸린 집주인이 돈이 든 통장을 주인공에게 건네는 설정이, 희곡과 연출을 맡은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2015년作)'에선 틱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그도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장씨는 서로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사회의 모습들을 조명하려고 시도한다.

예컨대 연극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의 틱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시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상인들에겐 존재 자체가 불편한 대상으로 그려진다.

장씨는 "자기 일이 아닌 이상 대중에게 다른 사람의 고통은 호기심에 불과하다"며 "관객들도 틱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행동에서 처음엔 실소를 터뜨리지만, 연극이 진행되며 그가 처한 녹록치 않은 삶을 보고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첫 연출 이후 9년간 매해 한두 작품씩 연출을 맡아 연출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관객과 평단이 모두 만족하는 대작(大作)을 무대에 올린다는 큰 꿈과 극단 미소 식구들이 함께 계속해서 연극을 할 수 있는 희곡 작품을 쓰겠다는 소박한 꿈이다.

대작에 대한 욕심은 연출가, 희곡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소박한 꿈에 대해 장씨는 "극단 식구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게 좋은 희곡을 먼저 고르고 거기에 등장인물이 2명이면 극단에서 출연할 배우들을 뽑는데, 장씨는 극단 식구에 맞춰 희곡을 직접 쓰면 된다는 생각이다.

장씨는 "희곡을 쓸 때 극단의 식구 수를 딱 맞추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다만 식구들 없는 연극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식구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하겠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당신에게 연극이란" 질문에 대해 장씨는 "연극은 극단이고, 극단은 식구다"고 강조했다 

창원=정치섭 기자 c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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