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정신장애인이 있습니다”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인터뷰

기사승인 2018-08-18 0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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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을 강력 범죄로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한정자)의 유동현 센터장(28, 사진)을 설명이다.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정자 사무실에서 유 센터장을 만났다. 한정자는 정신장애인들의 권익과 지원 활동을 하는 NGO다. 

기자를 맞으러 나온 유 센터장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막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활동가들과 함께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약삭빠른 기자의 이야기를 듣다 곧잘 웃음을 터뜨렸다. 유 센터장을 비롯해 활동가 일부는 정신과적 질환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어려움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잘 도울 수 있다. 

◇ 관심이 없다

- 1월부터 센터장으로 활동했다고 들었다. 

“그 사이 인력 변동이 좀 있었다. 내실을 다지는 작업도 진행됐다.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있었다.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운영해가고 있다.”

- 한정자는 요즘 무슨 활동을 하고 있나. 

“지역에서의 활동을 주로 맡고 있다. 활동가가 정신장애인을 직접 찾아가는 ‘독려상담’이 30~40% 가량 된다. 이밖에도 활동가들 교육이나 모임, 토론회 등도 하고 있다.” 

- 인원이 많지 않은 것 같다. 

“10명이 안 되는 활동가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상근 인력은 5명이다. 인원은 적어도 사회복지를 깊게 공부하는 이들이 여럿 된다.” 

-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 

“지자체와 장애인단체로부터 사업예산을 받고 있다. 후원자들도 있다.” 

- 일상에서 정신장애인은 여러 어려움을 겪는다. 

“일단 취업이 어렵다.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어떤 사업장은 고용을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성실히 일하고 있음에도 일부 사업장은 고용 지속을 약속하지 않는다. 정신장애인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곳도 딱히 없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긴 하지만, 소모적으로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소통은 어렵다고 본다.”

- 편견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중과 우리 사회의 불안감에 대해 일정부분 이해는 된다. 사실 대중이 정신장애인 소식을 처음 접하는 건 언론일 경우가 많은데, 강력사건에 종종 등장하다보니 부정적인 인식이 쌓이게 된다. 여론과 군중심리에 휩쓸리게 되는 거다. 심지어 지역에서 ‘정신장애인=사건’으로 대상화하는 경향조차 발견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 최근 정부가 미투운동 보도에 대해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보도 권고안을 만든 것처럼 말인가.

“그렇다. 사실 일반 대중은 초중고에서 이와 관련한 교육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언론이 이를 제대로 잡아줘야 하는데 보도를 보면 여러 측면에서 안타깝다. 정부 차원에서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바로잡도록 나서야 한다. 그러나 정부부처와 국회 모두 관심이 없다. 다른 현안에 묻혀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 1년을 넘었다.   

“기가막힌건 ‘외래치료명령제’다. 말은 환자를 관리한다고 했지만, 뜯어보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감시’에 방점이 찍혀있다. 용어부터 매우 강압적이고 수직적이다. 법 시행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지역 사회 정착이란 당초 취지와 다르게 곳곳에 정신장애인을 옭아매고 통제하려는 장치를 두려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우선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매우 유감이다.”

- 의료계는 법 시행에 반대가 많았다.

“여전히 지역 내 환자를 위한 안전 및 보호망은 부실하다. 법 시행 이후 퇴원이 이뤄지긴 했지만, 지역에 이렇다 할 곳이 없다보니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적지 않다. 강제입원비율은 감소했지만, 결과적으로 병원 병상 수는 유지되고 있다. 시행 전 의료계와 복지부 모두 명분을 쌓고, 서로에게 명분을 실어준 것 같단 느낌이 든다.” 

- 정신장애인에 대한 가혹행위는 완전히 근절됐다고 보나.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정신과 치료 받다가 트라우마가 생겼다거나 지역사회에 위치한 정신과 보호병동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분들이 연락을 해왔다. 이들이 주장한 피해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밝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 정신장애인이 있습니다”

◇ 약자를 돕는 건 약자

영화와 드라마, TV 등 미디어 속 정신과 질환 환자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환자들은 ‘사이코 범죄자’나 ‘바보’ 등으로 묘사되고 소비된다. 굳이 ‘미디어는 메시지’란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런 부정적 메시지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만든다. 그리고 정신과 질환을 가진 범죄 용의자의 사건은 편견을 강화시킨다. 그렇게 애꿎은 정신장애인들은 관리하고 통제해야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정자 사무실을 나서기 전 한정자가 왜 필요한지를 묻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센터장의 대답보다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더 궁금했다. 다행히 웃음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작은 의미로는 정신장애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써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만큼은 본인의 속내와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터놓고 할 수 있으니까. 정신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존재 이유가 있다. 넓게는 국내 정신장애인 권익 보장 운동을 위한 한 기점으로써 필요하다.” 

교회 지하의 허름한 공간에서 이들은 아침 밤낮으로 정신장애인을 돕기 위해 계획을 짜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한다. 자리를 파하고 나오며 반짝이는 국회의 대리석 바닥과 에어컨 바람이 펑펑 터지는 회의실이 문득 떠올랐다. 

약자를 돕는 건 약자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일은 많지 않다. 한정자도 그렇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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