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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안해서합니다] “문 닫은 유치원, 아이를 회사에 데려왔다”

“문 닫은 유치원, 아이를 회사에 데려왔다”

신민경 기자입력 : 2018.12.10 05:00:00 | 수정 : 2018.12.10 16:56:48

“‘박용진 3법’이 통과된다면 집단 폐원하겠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집단 폐원’을 발표하자 ‘맘 카페’에서는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끝까지 이기적이네요.” 

유치원 운영자의 일방적인 폐원은 불법입니다. 현행 유아교육법상 사립유치원 폐원은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데요. 폐원을 원하는 운영자는 적절한 사유와 아동에 대한 전원 조치 등을 명시해야 합니다.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와 유치원 운영위원회 통과도 폐원 신청 요건입니다. 조건을 지키지 않은 채 유치원이 무단 폐원한다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한유총은 엄포를 놨습니다.

사립유치원이 집단 폐원한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나올 수 있는 해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입니다. 일단 국·공립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수소문해야 합니다. 원아 모집 시기라도 놓쳤다면 돌아오는 것은 대기 순번뿐 일테죠.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가정이 태반입니다. ‘아이 돌봄이’를 채용하는 것 또한 그 비용을 생각한다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새 유치원을 찾기 전까지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까요. 방법이 없다면 맞벌이 부부나 일하는 편부모들은 아이를 회사에 데려가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회사라,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직접 체험해봤습니다.

기자는 미혼입니다. 아이가 없는 관계로 조카를 섭외했습니다. 물론 부모의 동의를 받아 촬영했습니다. 출근 한 시간 전, 아이를 깨웁니다. 일어나기 싫다며 칭얼댑니다. 시작부터 난항입니다. 아이는 10분 정도 마사지를 받고 나서야 일어났습니다. “나 아침밥 안 먹을래.” 진땀 나는 실랑이가 시작됐습니다. “밥 다 먹으면 이모가 저녁에 장난감 사줄게.” 그제야 아이는 밥 한술을 떴습니다. 외출 가방을 챙깁니다. 간식, 장난감, 여벌의 옷 등 챙겨야 하는 물건만 수십 가지. 여기에 노트북이 든 가방까지 짊어지니 몸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서류 작성 업무가 있어 잠깐 편집국에 들렀습니다. 삭막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이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이모 이거 다 쓸 때까지 잠깐만 기다리자.” 아이를 앉히고 재빨리 노트북을 켭니다. ‘쿵’ 아이가 만지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주의가 산만해 집니다. 동료들의 눈초리가 느껴집니다. ‘유치원에 갔다면 신나게 뛰어놀았을 텐데.’ 시무룩한 녀석의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오후 12시, 외부 취재에 가야 합니다. 장소는 여의도 국회 정문. 주최 측은 난데없이 등장한 아이에 당황한 모습입니다. 가만히 있기 지루한 모양입니다. 아이가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도로가 가까운 탓에 신경이 곤두섭니다. “이모 옆에 있어야지!” 다급한 마음에 큰 소리가 나갑니다. 아이를 보면서 취재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이 겹쳤습니다. 아이를 굶길 수는 없습니다. 또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제시간에 기사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밥을 먹이고 닦아주는 등 점심시간은 평소보다 2배 이상 걸렸습니다. “마감 대체 언제 하냐. 뭐 하고 있는 거야.” 이윽고 선배에게 독촉 문자가 날라 왔습니다. 또다시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냅니다.

“잠깐이라도 일에 집중할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키즈 카페’를 생각해냈습니다. 키즈 카페에 들어가려는 찰나 아이는 “들어가기 싫다”며 떼를 부립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한 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결국 장난감을 사주고 키즈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40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끝내 기사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일·육아 병행 체험은 결국 실패했습니다. 

기자는 죄인이었습니다. 이날 “업무가 늦어져 죄송하다.”는 보고만 수십 번. 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녔을 뿐, 여기에 교육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습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두 사람 모두에게 유익하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유총의 폐원 선언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는지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한유총의 집단폐원을 두고 시민단체는 ‘아이들을 무기로 삼은 협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이 돌봄과 부모의 노동시간은 직결되어 있어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입니다. 남궁수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우리나라 특성상 근무시간이 유연하지 않아 유치원이 집단 폐원한다면 부모가 회사로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일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대책은 없는 걸까요. 배지현 성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사립 유치원이 농촌 지역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등 사회공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 사립유치원이 비리 유치원으로 비치는 것은 문제가 있으나 내부적으로 투명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공식으로 사과하고 정부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지금 한유총에 필요한 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아닐까요. 좁혀지지 않는 정부와 한유총의 간극, 부모들의 한숨은 늘어갑니다. 

신민경 기자, 지영의 인턴기자 smk5031@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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