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로페이, 손은 마음과 달랐다

제로페이, 손은 마음과 달랐다

기사승인 2018-12-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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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제로페이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니까요. 지금 이 상태면 손님들이 안 쓸 것이 보이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헌데 근본 문제는 외면하고 작위적 ‘홍보’만 매달리니 답답한 거죠. 서비스나 혜택 좋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든 쓰는 게 한국 사람이잖아요. 역으로 물어봅시다. 제로페이 쓸 건지.”

제로페이 취재를 위해 한참 시청·명동 부근 상인들을 만나고 있을 때 받은 질문이다. 차마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나조차도 사용할 필요를 썩 못 느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을 돕는다니까 앞으로 써야 되겠다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말이다. 한 해 ‘2500만원’을 제로페이로 써야 약 47만원을 돌려받는 소득공제율 역시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결제 과정 역시, 앱 실행 후(결제비밀번호 입력) → 매장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를 촬영 → 결제금액 입력(결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경우도 있다) → 돈이 들어왔는지 주인이 스마트폰으로 확인. 설명은 간단해 보이지만, 과정은 길었다. 줄이 늘어서는 점심때는 제로페이 결제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분명 계산대 앞 내 손은 마음과 다르게 행동할 게 뻔했다. 뭔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문제는 여기 있는지 모른다. 우리 대다수가 이럴 것이라는 것. 

역시나 첫날 제로페이에 대한 언론의 반응 역시 시큰둥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오히려 소상공인들을 질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댓글이었다. ‘쯧쯧 지들(상인들) 생각하고 만든 제도인데, 그러니 개돼지 소리 듣는 거다’, ‘지들 카드 수수료 덜나기는 데 뭐가 불편해? 신용카드 쓰던 고객이 불편하지’, ’상인들아, 이따위로 할 거면 카드사 수수료 비싸다고 징징대지 마라‘, ’바뀔 생각은 않고, 고마운 줄 모른다‘ 등의 ’해주면 감사한줄 알아라‘ 식의 반응이 넘쳤다. 

상인들의 지적은 이대론 고객과 매장서 안착이 어려울 것이라는 현장의 호소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소상공인에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댓글을 쓴 사람 중 제로페이를 써 봤던, 아니 쓸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재까지도 매장에서 제로페이로 결제를 했다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서울시 공무원이 많은 시청 인근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이들도 계산대 앞에선 마음보다 손이 앞선 모양이다.

고객들이 앞다퉈 쓰기 시작하면 상인들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당연히 따라간다. 제로페이 성공의 키는 상인이 아니라 대중이 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인들이 고객의 편의를 걱정하는 ‘웃픈’ 모양새다. 돌이켜보자 카카오페이 도입 시엔 이런 우려가 있었는지,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소상공인을 질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비난이다. 

[기자수첩] 제로페이, 손은 마음과 달랐다제로페이 시행이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물론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많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 앞선 ‘페이’ 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제로페이를 기획하며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너무 아마추어적이다. 

아울러 소상공인들은 과거 제로페이 설명회부터 예상되는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상인들은 개선된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말한다. 아울러 이렇게 빨리 시행이 이뤄질 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본격 시행에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획기적 보완책이 나오긴 부족해 보인다. 

혹자는 중국 상황을 빗대 우리나라는 왜 못하고 있느냐 묻는다. ‘알리페이’도 하는데, ‘제로페이’는 왜 안 되냐는 것이다.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에 있다. 당신부터 지금 전자결제에 익숙한지. 위조지폐가 많고, 카드 거래가 확산하지 못한 중국과 한국은 분명 상황이 다르다. 전자결제가 한국서 자리를 잡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으론 이 같은 ‘제로페이’가 본말을 전도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 살리기의 일환 중 하나인 수수료 제로 정책에서 나온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마치 ‘전자결제 혁신을 이뤄내자’는 것 같다. 이 괴리서 소상공인은 갈팡질팡 하고 있고, 대중들도 머리 속에 ‘제로페이, 수수료’ 만 남긴 채, 정작 본질인 ‘소상공인 살리기’는 도리어 잊지 않을까 두렵다. 

반짝하고 사라질 제로페이를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안착은 힘들어 보인다. 제로페이는 ‘캠페인’이 아니다. ‘소상공인을 도와야 하니 제로페이를 씁시다.’라는 말은 정작 소상공인들에겐 허울 좋은 구호로 들릴 뿐이다.

남은 기간동안 ‘제로페이 확산 결의’, ‘제로페이 결제 운동’ 같은 맹목적 홍보에 공 들여선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카카오페이와 맞서도 경쟁력 있는 혜택을 마련하고, 결제 시스템 전반을 가다듬는 현실적인 보완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 수단에 가려 본질을 망각해선 안 되지 않은가.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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