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힌 국내 임상, 작동하지 않는 관리기전

기사승인 2019-01-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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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임상시험장으로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임상시험의 적극적인 유치와 시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의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나 만족만이 아니라 신약이나 신기술을 기다리는 환자나 신시장 개척과 이윤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럼에도 임상시험을 관리·감독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할 식품의약품안전처(처장 류영진, 이하 식약처)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식약처는 뭘 하고 있을까.

◇ 임상시험, 6년째 제자리걸음… 말로만 활성화 외치는 식약처

임상시험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investigator initiated trial, IIT)과 의뢰자 주도 임상시험(sponsor initiated trial, SIT)이다. IIT는 연구자가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설계해 자료기록, 이상반응 보고, 의약품관리 모니터링 점검 등을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다. 반면 SIT는 일련의 일들을 제약회사 혹은 의료기기업체 등이 수행한다.

그러나 IIT와 SIT를 나누는 기준이 시험의 주체가 기업이냐 의사냐 라는 형식적인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의 목적과 결과, 연구의 영향 등에 차이가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는 IIT가 기업의 이익과 무관한 학술적 성격의 연구로 유사한 조건에서 사용하는 약들의 임상적 효과나 가격대비 효능 등을 비교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희귀·난치성 질환의 치료법이나 기존 약물의 허가사항 외 새롭게 적용 가능한 질환을 탐색하는 등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소홀해질 수 있는 연구들이 IIT를 통해 이뤄질 수 있어 보다 공익적 관점에서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도 강조한바 있다.

문제는 2012년까지 급속도로 증가해온 임상시험 수행건수가 새로운 규제와 제도에 발목 잡혀 최근 6년간 성장이 멈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다국적 제약사들의 임상시험이 늘어나며 유지되고 있을 뿐 국내 SIT나 IIT는 줄어들거나 현상유지에 급급하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내부적으로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외적으로 또는 공식적으로는 임상시험계획 승인제도(IND)가 도입된 2003년부터 임상시험 승인건수가 2017년까지 4.6배 증가했다며 순탄히 잘 운영·발전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또한 임상시험계획의 승인과 실시기관 지정 등 사전관리부터 이상약물반응보고, 안전성보고, 임상시험 실시상황보고, 임상시험 종료보고 등 사후관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으며 정기·수시 실태조사를 통해 2중으로 점검하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 규제당국 자칭하며 사후관리조차 ‘허술’… 국가차원의 개편 ‘절실’

반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당장 식약처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관리체계조차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실제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평균 650여건이 이뤄진 임상시험에 대한 정기 혹은 수시 실태조사는 평균 50건을 시행하는데 그쳤다.

이마저도 의약품 부작용 보고에 대한 점검이나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사안에 대한 확인, 생명윤리법 등에서 정한 기준이나 당초 제출한 계획에 따라 임상시험이 이뤄졌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종료보고나 실시상황보고 관리도 연구자의 재량에 맡겨져 대외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기 전에는 허위보고나 결과조작, 결과 미제출 등을 가려내기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시피 한데다 규제만 늘어나 공익적 성격을 띤 IIT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2015년 6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급여적용 기준 개정이 이뤄지며 연구자 임상시험용 약제를 제외한 외부 영리기관에 의한 경제적 지원이 일절 차단돼 행정비용이나 임상 대상자 보험금 등 최소한의 제반사항을 연구자가 모두 부담하게 되며 연구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실제 일련의 규제와 제도적 한계로 인해 광역학치료 관련 IIT와 주가조작의혹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등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범석 교수는 “규제를 푼다고 하면 규제를 담당하는 부서가 생기고 규제를 푼다는 명목으로 규제가 하나 더 생긴다는 서글픈 농담이 있을 정도”라며 불필요한 규제만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방영주 교수도 “최근 국내 임상시험의 발전에 몇몇 장애 요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이 매우 적극적으로 임상시험제도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촌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김진석 교수 는 “2017년 초부터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대한 지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발표된 것은 없다”며 “임상시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항암제 관련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제도개선과 병원 및 학회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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