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법블레스유’, 전두환

‘법블레스유’, 전두환

기사승인 2019-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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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법블레스유’, 전두환국가 내란, 유혈 진압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 그런 사람의 골프장 나들이까지 경찰을 동원해 경호하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 혈세로 말입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연결고리만 넣으면 됩니다. 납득하기 힘들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법블레스유’라는 신조어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법’과 ‘블레스유(bless you)’의 합성어로 ‘법이 너를 살렸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습니다. 전두환씨입니다. 전씨는 지난 1997년 12.12 군사반란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 유혈 진압 등 13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후 구속 2년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습니다. 전씨는 “내 전재산은 29만 원 뿐”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고 호의호식 해왔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돌연 자서전을 냈습니다. 그리고 헬기사격을 봤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향해 ‘가면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평소 부인했던 ‘5.18 북한군 개입설’을 갑자기 시인한 것도 부족해 본인을 ‘치유와 의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은 제물’로 지칭했습니다. 

사자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알츠하이머와 감기를 이유로 출석을 거부한 전씨. 기막힌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첫 재판이 열렸던 지난해 8월, 전씨가 강원도 소재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전 재산이 29만원 뿐인 이가 캐디에게 5만원권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팁으로 주려 했다고 합니다. 골프를 치면서 본인이 직접 스코어를 셀 정도로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전씨 측은 “운동과 법정 진술은 다르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입니다. 

전씨 개인도 문제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특혜를 보장한 법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전씨는 법적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된 상태입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 '권리의 정지 및 제외 항목'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에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됐어도 경호는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이라는 법적 근거도 있습니다. ‘주요 인사’를 경찰이 정해진 기한도 없이 경호하도록 한 법이죠. 지난해 10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전씨 경호·경비 인력 현황에 따르면, 경찰관 5명이 전씨를 경호하고 의경 78명이 전씨와 노태우씨 집을 함께 경비합니다. 1년에 이 두 사람의 경호에 드는 비용만 9억원에 이릅니다.

경찰은 일단 올해 안에 전씨와 노씨의 경호 인력을 제외한 경비 인력을 모두 철수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경호 인력 5명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로 규정돼 있어, 법률 개정 없이는 줄일 수 없습니다.

무려 20여년 전 부과된 추징금 2205억원 중 절반을 아직도 내지 않고 버티는 데다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면서 보란 듯 골프장을 방문한 전씨.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습니다. 

“5공화국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우리 두 노인네 좀 너그럽게 봐달라” 전씨 부인 이순자씨의 발언입니다. 동정심에 호소하기에는 전씨의 만행으로 피눈물 흘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5.18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요. 대한항공(KAL) 858기 희생자 가족, 형제복지원과 삼청교육대 피해자들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 자택 앞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외침으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전씨 자택을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는 수십 명의 경찰들을 보며 이들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을 겁니다. 국가에서 세금을 들여 보호해야 할 이들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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