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봄(春)은 봄(見)이다

입력 2019-03-20 17: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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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외출을 하다보면 발길을 멈추는 일이 잦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볼거리에 걸음이 붙들려서다. 차가운 땅을 헤집고 삐죽삐죽 올라오는 새싹과 메마른 나뭇가지를 비집고 꼬물꼬물 올라오는 새순들이 마냥 신기하다. 하루하루 생기를 더해가며 개화 준비를 하는 봄꽃들이 그저 대견스럽다.

그런 차에 지난 주말 찾은 집 근처 고양시 고봉산에서 눈이 그야말로 성찬을 즐겼다. 겨울을 나며 황량하고 삭막해졌던 산판이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이미 녹색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끝낸 듯했다. 꽃나무마다 탐스럽게 맺혀 있는 몽우리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봄이다. 아직도 찬바람이 제법 매섭건만 봄은 어느새 녹색 빛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지금껏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던 봄이 새롭게 느껴지니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쨌든 봄이 느껴지니 참 볼 게 많아졌다. 아니, 볼 게 많아지고 나니 봄이 느껴졌다.

문득 봄()은 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사이가 무관치 않을 것 같아 여기저기를 뒤지다 단서를 잡았다. 봄의 어원에 관한 여러 설 가운데 동사 보다에서 나왔다는 내용을 찾았다.

국문학자 양주동 선생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봄의 어원이 보다에서 왔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했다. 봄은 정말 볼 것이 많은 계절이라는 뜻이다.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고, 여기저기 움트는 소생을 보는 계절이 봄이라는 것이다.

어원이야 무엇이면 어떤가. 봄은 보는 계절이다. 볼 게 많은 때다. 그러니 많이 보라는 뜻이다. 겨울이 눈을 닫아버린 세상이라면, 봄은 눈을 뜨고 보는 세상이다.

지금부터라도 보자. 많은 걸 보자.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멀리 떨어져서도 보자. 물끄러미 보기도 하고 진지하게 보기도 하자. 봄이 어떻게 와서 어떻게 가는지를 보자. 죽어 있던 대지가 어떻게 싹을 틔우고, 삭막한 나무 줄기가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를 보자. 움츠렸던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켜고 활동하는 모습도 보자. 보고 또 보자. 우리가 보아야 봄이 더욱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원숙해질 것이다.

[칼럼] 봄(春)은 봄(見)이다

육신의 눈으로만 볼 것인가. 마음의 눈으로도 보자. 마음의 눈을 열어 나 자신도 보고 주위도 둘러보자. 나만 생각하고 내 것만 챙기고 있지 않는지 보자. 나 자신의 부족하고 못남을 꿰뚫어 보자.

그리고 주위 어려운 이들을 보자. 어디 외로운 이는 없는지, 아픈 이는 없는지, 굶주리는 이는 없는지 따뜻한 눈으로 돌아보자. 무엇보다도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는 없는지 정갈한 눈으로 살펴보자.

혹 여유가 있다면 이 사회와 나라에도 눈을 돌리자. 곳곳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고장 나 삐거덕거리는 이 사회와 나라를 예리하게 지켜보자. 중앙이건 지방이건 소위 위정자라고 하는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두 눈을 크게 뜨자. 우리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고양시에서 24년째 살면서 세 번째 시장이 시정을 이끌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이전 두 시장의 성적표를 거의 낙제점 수준으로 매기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일부 시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혹과 논란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현 시장은 어떤가. 두 전임 시장을 반면교사 삼아 오직 시민과 지역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할진대 과연 그런가혹시 뭔가에 발목 잡혀 제대로 소신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에 관한 말씀을 들었고, 그 예수님이 부활해 바로 옆에서 동행하고 있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이다. 소위 말하는 눈 뜬 장님들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싹이 돋고 꽃이 핀다고 봄이 아니다. 개구리가 깨어나고 철새가 돌아왔다고 봄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볼 때에야 비로소 봄이다. 육신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고 보게 될 때가 봄인 것이다. 보기를 원하고, 보고자 노력할 때 진정 봄()이면서 봄()이 아닐까.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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