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별세, 국내 항공산업 선구자 평가

기사승인 2019-04-08 12: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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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LA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지난 1949년 3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고(故) 조양호 회장은 경복고등학교와 인하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국내 항공산업 선구자로 평가받는 고 조 회장은 평생을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으로 국내 항공‧물류산업을 이끌어왔다. 시작은 지난 1974년 대한항공 입사였다. 대한항공에 몸담았던  45년간 조 회장은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러한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특히 국내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이며 사실상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격적인 경영자로서 나선 것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취임이다. 이어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라 그룹 경영을 책임졌다. 그는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이들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기도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1998년 외환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하기도 했다.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 변화에서도 조 회장은 저비용 항공사 설립을 선택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저비용 항공사 설립을 통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한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Jin Air)를 창립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올해 창립 50주년으로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고, 일본 3개 도시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고,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측은 “이러한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양호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왔다. 항공업계의 UN이라고 불리우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특히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Board of Governors)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도 맡아왔다.

한진그룹 측은 “이는 사실상 전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조 회장의 IATA에서의 위상은 2019년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별세, 국내 항공산업 선구자 평가체육과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조 회장은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또한 그는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 회장은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켰다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조 회장의 결정이 있었다. 대한항공 측은 “조 회장이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한국도 세계적인 문화 사업에 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 소재 육군 제 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다. 또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 동안 퀴논에서 근무한 후 다시 강원도 비무장지대로 돌아와 1973년 7월 만기 전역까지 36개월 군 복무 후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한진그룹 측은 “이러한 조양호 회장의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염원이었던 동계올림픽 개최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으며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 한국언론인 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2년 1월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대한항공 측은 8일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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