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위험 큰 한국, 노동자 지켜줄 사회안전망은 허술

과로에 대한 산재보험 인정기준 까다로워

기사승인 2019-04-10 0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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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위험 큰 한국, 노동자 지켜줄 사회안전망은 허술

세 아이를 둔 워킹맘 공무원의 과로사,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사고, 환자를 돌보다 돌연사한 故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에서 ‘과로’로 인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장시간 노동은 심뇌혈관질환 및 정신질환 발생 위험을 높인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과로로 인한 한국사회 질병부담과 대응방안’에 따르면,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전체 심뇌혈관질환자 중 장시간 노동으로 발병한 비율은 남성은 1.4~10.9%, 여성은 0.5~3.3%였다. 60시간 이상 일한 경우로 한정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져 남성은 2.1~16.1%, 여성은 2.9~16.8%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은 남성이 0.7~6.2%, 여성이 0.4~2.3%였으며, 사망에 이른 경우는 남성이 0.2~2.1%, 여성이 0.5~3.4%였다.

이를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한 결과, 장시간 노동에 따라 남성은 약 2조 5500억원에서 최대 4조 1100억원, 여성은 최소 8000억원에서 최대 1조 47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과로를 교대근무 여부로 정의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이 더 위협받고 있었다. 교대근무에 따른 심뇌혈관질환자 비율은 여성이 2.5~5.1%, 남성이 0.6~1.4%였다. 정신질환 유병자 중에선 여성이 2.8~5.7%, 남성이 1.7~3.9%였다. 

사망의 경우 여성이 1.9~4.0%, 남성이 0.1~0.3%로 나타났다. 이를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할 때 교대근무로 인한 질병부담은 남성이 5300억원, 여성이 1조 5900억원 정도로 추계됐다. 이를 합치면 과로는 우리 사회에 연간 5~7조원 정도의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정하고, 과로로 산업재해를 인정해줄 땐 발병 전 12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한국 남성은 14.0%, 여성은 5.1%가 주당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40대가 20.7%를 차지했고, 60대 16.4%, 50대 15.8%, 30대 11.4%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장시간 노동 노출 비율이 낮은 여성은 60대가 9.3%로 가장 높았다.

교대근무 비율은 남성 14.4%, 여성 11.6%였고 남녀 모두 30대(남성 25.1%, 여성 19.5%)가 가장 높았다. 이어 20대(남성 16.3%, 여성 19.3%)가 뒤를 이었다.

2015년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273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66시간보다 507시간이 길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일본의 1719시간보다도 554시간이나 긴 노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사전 예방 차원의 정책으로 ‘장시간 근로자 보건관리지침’과 ‘뇌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발병위험도 평가 및 사후관리지침’, ‘근로자 건강센터’ 운영 등을 시행하고 있다. 사후적 안전망으로는 산재보험제도와 유급휴가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전 예방 정책의 경우 대부분 사업주의 자율적 판단 하에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사업장에서 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업무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과도한 업무 부하로 인한 뇌심혈관질환은 물론 정신장해에 대해서도 업무상 질환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산재보험에서는 업무상 과로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심뇌혈관질환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격한 인정기준으로 인해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로로 인한 건강 문제를 막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과로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이러한 노동이 필요한 경우라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의학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만약 과로로 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면 노동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재활, 직장 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과로에 대한 산재보험 인정기준을 완화하고 산재보험 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급여 부문을 축소하고 휴업급여의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임으로써 산재보험의 안전망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망 확보 역시 중요하다. 이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산재보험료를 지원하는 방식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 효과적인 재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질병 발생에서 직업 복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재활 서비스 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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