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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멸일까 공존일까’…유통가 치킨게임

유통가에 제임스 딘은 필요 없다

한전진 기자입력 : 2019.04.23 05:00:00 | 수정 : 2019.04.23 14:32:07

'치킨게임'은 배우 제임스 딘이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양쪽 도로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서로를 마주 보며 달려드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하면 둘 다 죽을 수 있다. 하지만 먼저 핸들을 돌리는 사람은 겁쟁이가 된다. 승리의 보상이 크면 클수록 포기가 어렵다. 

작금의 유통가 상황을 이 같은 ‘치킨게임’에 빗대는 시각이 많다. 1000원을 내리면 이쪽도 1000원을 내리는 식의 ‘초저가’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첫 시작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업계였다. 특가 행사를 비롯해 쿠폰 지급, 할인율 확대 등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를 상시 운영하며 외형을 끝없이 확장해 나갔다. 

그중에서도 쿠팡의 기세가 대단했다. 천문학적인 적자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4조4228억원으로 전년(2조6846억원) 대비 64.7% 증가했다. 다만 영업 손실 또한 6389억원에서 1조970억원으로 증가한 상태다. 

이에 대응 중인 위메프와 티몬 등의 적자도 상당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치킨게임’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사실 이커머스 업계는 이 같은 ‘치킨게임’ 프레임에 부정적이다. 당장의 이익보다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마주 달려오는 차에 탄 것이 아니라 ‘같은 배’에 탄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자는 이커머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롯데와 신세계 등 기존의 유통 공룡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칼을 뽑아들었다. 오프라인 고객이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면서다. 온라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들 역시 ‘초저가’라 불리는 치킨게임에 가세했다. 이커머스발 가격파괴 경쟁은 오프라인으로도 옮겨붙었다. 

일례로 롯데마트는 최근 ‘극한가격’을 진행하면서 경쟁사인 쿠팡과 이마트를 대놓고 거론했다. 롯데마트는 내달 1일까지 2주간 총 16개 품목을 오프라인은 이마트보다, 온라인은 쿠팡보다 낮은 가격에 팔겠다고 공언했다. 마트업계 1위인 이마트는 올 초부터 ‘국민가격’ 마케팅을 벌여 왔다. 홈플러스도 가세한 상태다. 

‘중간’ 이 사라진 초저가 시대. 온라인 소비가 급속도로 늘면서 대형마트 역시 ‘살’을 깎더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2014년 45조원에 불과하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90조원까지 커진 것으로 예상된다. 무려 2배나 늘었다. 올해는 120조원을 돌파도 예상되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콜로세움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은 다수가 공존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지역과 공간의 제약도 없다. 고객들은 썰물처럼 들어왔다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야말로 중간이 없는 시장이다. 마치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다만 승리하고 살아남는다면 아마존과 같은 독점적 지위가 보장된다. 100조원의 유통 시장을 한 손에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과거 ‘포털’ 붐의 궤적을 따르진 않을지 걱정이 든다. 10여 년 전을 생각해 보면, 야후·엠파스·라이코스·네띠앙·프리첼 등 수많은 포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사라졌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사실상 단독으로 살아남은 것은 현재의 네이버가 유일하다. 온라인 쇼핑 시장은 이와 달리 공존이 가능할까. 

유통가의 치킨게임 역시, 이면에는 ‘승자독식’이라는 동상이몽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 물론 이 경쟁 과정에서 소비자는 다소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싸움이 지나간 자리에 ‘공멸’이 있다면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가 입게 된다. 발전 없는 저가 경쟁보다 수익 다각화 등 차별화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유통가 모두가 ‘공존’ 하는 길이 아닐까. 제임스 딘은 영화로 족하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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