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조 미래 의료용 대마시장 진출, 법·제도에 ‘거세’

수입·학술연구는 되고, 의약품 개발·임상연구는 안 되는 모순에 ‘발목’

기사승인 2019-04-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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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결국 환자의 행복과 희망을 찾아주는 행위입니다. 저는 의료용 대마에서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웃음과 꿈을 찾아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희망을 알리고 과학화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찾았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실망 또한 큽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이자 통증치료 및 의료용 대마관련 기업 8곳의 사장이기도한 제임스 에드워드 테일러(James, E. Tayler) 박사가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한 문단으로 요약하면 이쯤일 것이다. Dr. 테일러는 왜 자비를 들여가면서까지 한국방문을 계획했고, 무엇을 기대했으며, 어떤 점에 실망한 걸까.

방문 소식을 접한 후 일주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발길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금은 무례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질문을 장시간 쏟아냈다. 그의 경험과 지식이 대마에 대해 강한 규제정책을 펴왔던 정부가 지난달 12일 의료용 대마 수입을 일부 허용한다고 발표한 시점에서 국내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직설적이거나 곤란할 수 있는 질문도 있었다. 하지만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대하는 신경과 및 통증의학과, 마취과 의사들에게 의료용 대마의 효용을 알리기 위해서 미국에서 만난 한 만성통증환자의 초청해 흔쾌히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막힘도 꺼림도 없었다.

63조 미래 의료용 대마시장 진출, 법·제도에 ‘거세’

◇ 의료용 대마, 환자에겐 ‘희망의 불씨’

Dr. 테일러는 의료용 대마를 만성통증환자의 ‘희망’이라고 표현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그로 인해 우울, 불면, 실직 등 2차적 고통을 겪는 통증환자들에게 의료용 대마는 통증을 완화하고 일상생활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조성근 교수에 따르면 반복되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일수록 극단적이고 즉흥적이며 의지력이 떨어지고 희망이 사라져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다 극단적 선택을 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Dr. 테일러는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opioid)’ 남용과 그로 인한 중독문제가 최근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며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던 통증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마 유래물질 ‘카나비노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서두를 땠다.

이어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과 이를 포함한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를 환자의 통증관리에 사용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결핍상태인 내인성 카나비노이드를 채워 인체의 항상성과 균형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높여 질병을 예방하며, 통증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를 확인했다”면서 “고통이 줄고 여유를 찾으니 다시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의료용 대마의 미래는 밝지만 한국은…”

이처럼 환자에게 희망을 돌려주는 카나비노이드의 효과는 일종의 면역치료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따르면 대마의 주요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etrahydrocannabinol, THC)과 CBD 등 100종이 넘는 대마유래물질의 복합적 효과가 생물항상성(homeostasis)을 촉진해 건강을 유지하고 몸이 스스로를 치료하게 돕는다.

Dr. 테일러는 “카나비노이드는 CBG, CBV, CBN, CBGV, THC, THCV, CBC, CBCV 등이 있다. CBD를 다른 대마초 유래물질로부터 분리해 별도의 제제로 생산·공급할 수 있으며, 일부에서 제한적 성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 스펙트럼의 카나비노이드 오일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그가 직접 개발·생산한 카나비노이드 오일 등의 제품을 환자들에게 제공한 결과, 수면이나 불안, 우울, 고통, 염증, 자가면역질환, 편두통, 섬유근육통, 당뇨병, ADHD, 뇌졸중 회복 등 많은 상태이상에 효과를 봤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조금의 졸음, 메스꺼움 등을 호소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환자에게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미국 대마산업 분석기업 아크뷰(Arcview Market Research)와 비디에스 애널리틱스(BDS Analytics)는 2022년까지 전 세계 의료용 대마시장 규모가 현재의 3배 수준인 320억달러(약 36조56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지어 미국의 그랜드뷰리서치(Grandview Research)는 2025년까지 558억달러(약 63조7515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향후 5년, 약 6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춘 시장에 국내 기업이 진출하기가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Dr. 테일러는 “한국은 탁월한 의학자와 과학기술, 대마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까지 카나비노이드 약물의 세계적 리더가 될 핵심요소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면서도 “대마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 의료용 대마, 연구는 되는데 임상은 안 된다?

대마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혜택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의학과 유전학, 후생유전학, 신경성형술 등은 물론 인공지능과 각종 데이터 공학에 전통적인 대마의 이해와 접근이 함께 어우러져야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대마를 비롯한 마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존재한다고 봤다.

Dr. 테일러는 “의료용 대마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후생유전학 연구와 더불어 카나비오니드와 대마의 테르펜이 가진 100여가지 이점에 대한 깊은 이해는 상당한 의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것이다. 유전자검사와 인공지능 등은 ECS 관리의 복잡함을 더 빠르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며 “마약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면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이윤보다 의료 자체를 더 중시해왔다. 의료인들이 카나비노이드 약물의 개발에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한 것 또한 훌륭한 선택”이라며 “한국이 카나비노이드 약물의 발전을 주도할 미래를 하루 빨리 보고 싶다. 이를 위해서라도 한국이 갖춘 성공조건들에 더해 의료용 대마의 임상적 연구가 이뤄질 수 있는 지원과 환경을 갖춰야한다”고 조언했다.

CBD 오일 등 카나비노이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국내 의료진들 또한 Dr. 테일러의 의견에 공감하는 모습이다. 국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과 관련 규정 및 제도가 마약을 금지시키는 이유보다는 마약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취해 지나치게 경직되고 배타적이라고까지 평한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현행법 상 학술적 목적으로 대마를 취급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의약품 제조 목적으로는 재배나 수입이 막혀있고, 임상연구 또한 할 수 없다. 말만 하라고 하지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라며 “(의학적으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무서워 피하기만 해선 될 일도 안 된다”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 의견대로 정부가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마약류의 선정 및 관리 등을 총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연구시험의 범위에 인체 적용은 해당하지 않는다. 인체 적용 시험은 법에서 제한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이라 개정 등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다.

아울러 제품화 등을 목적으로 제약사 등 기업이 대마를 취급하는 것도 어렵다고 봤다. 식약처는 “제약사에서도 연구시험을 목적으로는 안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내에서는 대마성분을 가지고 의약품을 제조할 수는 없는 만큼 제품화해 품목허가 등을 받으려는 목적으로는 취급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허용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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