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고치는 화장품?..의사들이 '아토피' 화장품에 반대하는 이유

치료제로 오인 증상 악화 우려...환자 절실함 상업적으로 이용 지적

기사승인 2019-06-0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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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는 화장품?..의사들이 '아토피' 화장품에 반대하는 이유기능성화장품에 아토피, 탈모, 여드름 등 질병 표기를 허용한 화장품법 개정안이 시행 3년차를 맞은 가운데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5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피부과 의료계, 시민단체, 환자단체는 합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당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철폐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 환자들이 기능성화장품을 치료제로 오인, 치료시기를 놓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서성준 대한피부과학회장은 “개정된 화장품법의 시행 이유는 기능성화장품의 외연을 확대해 관련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장품에 질환명이 포함되면 일반 국민들은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해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경제적 소실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계와 소비자단체, 환우회 등이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전정권이 교체되는 정신없는 시기에 결국 해당법안을 시행했다”며 “국민건강을 수호하고 경제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화장품법 시행규칙의 폐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17년 5월 기능성 화장품의 범위를 넓힌 화장품법 시행규칙 제2조 6~11호를 신설한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 차단 세 가지에 국한됐던 기능성화장품의 범위에 아토피, 탈모, 여드름, 튼살, 탈색 등 7종을 추가해 총 10종으로 확대한 것이다.

시행 3년차를 맞은 현재 탈모, 여드름, 튼살 등 질병명이 표기된 기능성화장품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아직 ‘아토피’ 임상시험까지 완료한 화장품업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임상을 완료하고 기능성을 인정받은 ‘아토피’ 화장품도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서 이사장은 “최근 대학병원에 기능성화장품 인정을 위한 임상시험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피부과학회는 반대하고 있지만, 기능성화장품 관련 법안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아토피 화장품도 자체 임상을 거쳐 판매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아토피’질환은 화장품만으로 치료할 수 없고, 화장품의 ‘기능성’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입장이다. 정찬우 대한피부과의사회 정책이사는 “기능성화장품은 단연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 문제는 질병명은 기능이 아니고, 기능을 구분하는 기준조차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토피 기능성화장품의 ‘기능’이란 대개 보습력일 것이다. 그러나 보습력이 뛰어날수록 피부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아토피가 심한 환자에게는 보습력이 높은 제품이 오히려 안 좋다. 기능이 보습력이라면 보습도를 평가하고, 저자극성이라면 자극성에 대한 기준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이를 통틀어 ‘아토피’ 기능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기능성화장품이 확대될수록 소비자의 부담이 커진다. 김석민 대한피부과의사회장은 “의약품이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독성실험과 임상시험이 뒷받침 된다”며 “반면 화장품 성분의 효능효과는 검증도 어려울뿐더러 무리한 결과를 도출할 우려가 크다. 이로 인한 제품가격 상승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고 꼬집었다.

시민단체와 환자들도 의료계의 지적에 힘을 실었다. 환자들의 절실함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어릴 적부터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는 중증 아토피 환자 A씨(23세)는 ”아토피를 완화할 수 있는 화장품이 있다면 기대를 갖고 사용할 것이다. 중증 아토피 환자들은 그동안 많은 치료들을 거치면서 심적으로 지쳐있는 상태다. 기대감을 갖고 발랐는데 효과가 없다면 결국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혜 소비자시민모임 상임고문은 “질병명을 표시한 기능성화장품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가 빤히 예견되는 문제다. 산업 진흥보다 소비자의 안전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해당 시행규칙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과대광고와 소비자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황인순 아토피 희망나눔회 대표는 “아이가 학교에서 아토피 괴물이라며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기능성화장품으로 아토피가 치유될 수 있다고 하면 몇 백을 주고도 샀을 것”이라며 “환자 입장에서 너무나 상업적인 법안에 화가 난다. 지금도 아토피 환자들이 치료에 돈을 많이 쓰고 빚을 내기도 한다. 이런 화장품이 시중에 나오면 치료 기간은 길어지고, 환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아울러 서 회장은 “현재 아토피 치료제 중 가장 효과가 좋은 것으로 인정되는 의약품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의 부담이 크다. 식약처와 복지부는 산업보다 국민의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식약처는 지난해 아토피와 튼살 관련 효능·효과 평가법 가이드라인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한데 이어 올해 안으로 가이드라인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반대하는 의료계와 환자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 14일 윤일규 의원은 기능성화장품의 범위를 확대한 화장품법 2조2항을 다시 개정하는 내용의 화장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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