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 천년의 숲 비자림

기사승인 2019-08-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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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와 함덕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나간다. 그 동안 한라산 동쪽의 중산간지역과 해안 지역을 걸었다. 자연휴양림, 오름, 해안 길을 걷다 보면 한 끼 정도는 현지의 식당에서 외식을 하게 마련이다. 

  처음엔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잠시 당황스러워 ‘그냥 나가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손님으로 들어갔으니 당연히 ‘이쪽으로 앉으세요’하는 한 마디쯤은 들려와야 하는데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한다. 쉬는 시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어정쩡하게 자리를 찾아 앉으면 그제야 컵과 물병을 받쳐 들고 다가온다. 

  외지에서 와 생활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잠깐이지만 참으로 불편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불편했는데 그들은 당연한 듯 평온하다. 내가 생활해왔던 곳과 이곳 사이의 다름을 이렇게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곧 익숙해져 이제는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종업원을 기다린다. 

  다른 환경과 조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름 큰 희망을 품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2년 만에 나는 완전한 실업자가 되었다. 이때는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을 때였으니 큰 부담을 느껴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이렇게 무책임한 삼십대 초반의 가장은 어디에도 없을 터였다.

  태연자약한 실업자 생활을 시작하고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말할 수 없이 불편했던 복부의 증상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따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하지도 않았는데, 정확히는,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생각이 들며 다 나았음을 알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 가족들에게 이젠 다 괜찮아졌다고 말하기조차 어색해졌다.

  후에 내가 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고 알아본 내 증상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었다. 일반적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장에 이상 없이 만성적으로 배변 장애, 복통, 복부팽만감, 대변 내 점액 등의 증상을 보인다. 치료를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심리적 불안과 갈등을 제거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를 괴롭혔던 이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대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때 나는 스스로 현명하게 잘 대처했다. 운이 좋았다. 거의 실업상태에서 이제 말을 시작한 큰 애와 일어서기를 시작한 작은 아이 옆에서 말과 걸음 배우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석 달을 지냈다. 몸은 다시 취업할 준비가 되었으나 마음이 문제였다. 내가 스트레스에 매우 약한 사람임을 알았으니 이젠 욕심내지 말고 걷자고 마음을 먹었다. 

  제주에서 숲길 걷기는 나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낯선 환경을 살펴가며 행여 다칠세라 조심조심 걷기에 이만한 곳은 없었다. 자기 체력에 맞는 길을 선택해 발목, 무릎 그리고 엉덩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숲속의 새와 곤충과 풀과 꽃을 바라보며 눈에 익히고 귀에 담을 수 있으니 식물과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숲길 걷기가 오직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정비되어 있는 산책로일지라도 곶자왈 지형의 특성상 때로 튀어나온 암반과 나무뿌리는 어찌해 볼 수 없으니 길이 무작정 평탄하지는 않아 주의를 기울여 발걸음을 내 디뎌야 한다. 도무지 지루할 겨를 없이 8 킬로미터쯤은 걷고 나올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의 자연휴양림 숲길이다.

  휴양림 숲길을 걸으며 이 길 끝에 있는 오름에 올라 보니 때론 높고 때론 낮으며 숲으로 덮여 있어 아늑하기도 하고 바다 위 수평선까지 시야가 탁 트이기도 해 점차 휴양림 밖의 다른 오름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름 역시 걷기에 좋은 곳임이 틀림없다.

  오름으로 나서기 전 비자림을 걸었다. 수령 500년에서 800년까지의 비자나무 2,878 그루가 모여 있는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비자나무는 그리 흔한 나무가 아니다. 더구나 어떤 종류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라도 수령 수백 년의 건강한 고목이 이렇게까지 밀집되어 있는 곳이 없으니 제주도에 오면 비자림은 반드시 한 번은 찾아와 걸을 만한 곳이다.

  비자림의 산책로는 총 3.2 킬로미터인데 이 중 1킬로미터 정도는 휠체어나 유모차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다. 비자나무 숲 끝 쪽으로 연장된 오솔길 형식의 탐방로는 좀 더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2012년 봄 처음 비자림을 걸었다. 숲속에 가득한 덩굴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비자나무에 압도되었었다. 산책로를 나오다가 이 엄청난 무게의 비자나무조차 잊게 만든 너무나도 가벼운 새우란을 만났다. 산책로에서 멀지 않은 풀숲에 세 그루의 새우란이 꽃을 활짝 피우고 자신만만하게 햇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꽃은 마치 초콜릿색의 상의와 흰 치마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가씨처럼 보였다. 

  누군가 욕심내지 않는다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근처 어디선가 이맘때쯤 또 찾아올 그이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그 후로 내게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아니라 거기 있었던 새우란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두 해 뒤 찾아갔을 때는 비가 왔다. 우비를 입고 걸으며 숲이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덩굴과 그 덩굴을 뒤집어 쓴 나무들의 합창과 춤을 비자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스치는 바람에 숲의 온갖 향이 한꺼번에 실려 왔다. 빗속에서도 그 숲에 들어간 진짜 이유는 2년 전 보았던 새우란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새우란은 없었다. 누군가 욕심을 낸 것일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5년 뒤 다시 찾은 2019년의 비자림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수령 100년의 곰솔 고사목을 잘 다듬어 ‘천년의 숲 비자림’이라는 글귀를 새겨 입구에 세워두었다. 예전에 걸었던 산책로를 걸으며 보니 숲이 텅 비었다. 비자나무 사이사이  자라고 있던 활엽수에 기대어 숲을 가득 채웠던 덩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덤불도 많이 줄어 여기저기 이끼옷을 입은 바위들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이 숲의 주인인 비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송악, 마삭줄, 담쟁이 등의 덩굴을 대부분 제거한 듯했다. 덕분에 숲 깊은 곳까지 눈길이 미친다. 예전엔 덩굴들의 이파리 위로 솟아 있는 비자나무의 가지를 보며 그 크기와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비자나무의 등걸과 가지와 그 나무가 점령하고 있는 땅위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잘 보였다.

  비자림도 곶자왈이다. 흙 한 줌 없이 용암 바위들이 널린 곳에 나무, 덩굴 그리고 덤불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동안 나뭇잎이 쌓이고 그 아래로 뿌리들이 끝없이 물을 찾아 뻗으며 형성된 울창한 숲이 곶자왈이다. 비자림에 우뚝 선 2,878 그루의 비자나무들은 적어도 800여 년 동안 무수한 덩굴과 이 덩굴이 오르던 나무들과 그 아래의 돌들을 덮던 덤불 속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들이다. 나는 덩굴과 덤불이 무성한 비자림이 보고 싶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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