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선우정아, 수줍게 욕망하다

선우정아, 수줍게 욕망하다

기사승인 2019-09-21 0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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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무엇이 그토록 불만족스러웠기에.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는 2012년 발표한 노래 ‘비온다’에서 마음 한켠에 남은 어린 자신에 지금을 비춰보며 자조한다. 기타 루프는 경쾌하고 피아노 연주는 산뜻한데, ‘비온다’는 외침만은 울음처럼 애처롭다. 선우정아는 오랜 시간 이 노래를 자신의 ‘호크룩스’(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영혼을 쪼개 담은 물건)로 여겼다. 자신의 영혼을 모두 쏟아 만든 노래라서다.

그의 호크룩스는 최근 세 개로 늘었다. 지난 5월 발표한 ‘쌤쌤’과 8월 낸 ‘투 제로’(to Zero)가 그의 새로운 호크룩스들이다. 지난 19일 서울 양녕로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만난 선우정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한 움큼 넣은 노래”라고 소개했다. ‘있는 그대로의’ 선우정아는 어떤 존재냐고 물으니 “수줍은 아메바”라는 답이 돌아왔다. 형태가 일정치 않은 아메바처럼 자신도 항상 변형하길 욕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고민이 많고 마음도 작다며 ‘수줍은’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결국 제게 묻는 질문은 ‘그래서 넌 뭘 원하는데?’거든요.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저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격하게 하면서도 시원하게 답을 못 내는 편이에요. 한 걸음 떼는 게 쉽지가 않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메바 같아요. 모양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변형될 여지를 남기니까요. 그런데 또, ‘변하겠어! 나의 변화를 봐라!’라는 태도는 아니고요. 항상 수줍어요. 소심하고 고민도 많죠.”

선우정아는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통한다. 가수들에게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느냐고 물으면 장르를 막론하고 그의 이름이 나온다. 인터뷰에 앞서 열린 ‘2019 서울국제뮤직페어’ 기자회견에서도 가수 정미조와 예술감독 윤상 다음으로 높은 박수갈채를 받은 이가 선우정아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 미소 지으면서 “대중성과 음악인으로서의 재미, 도전정신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면을 알아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러 장르를 휘어 감으면서도 세련되고, 날 선 가사로도 위안을 주는 것이 선우정아만의 마력이다. 선우정아는 네 살 때 배운 피아노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을 경유해오며 내공을 쌓았다. 학창시절엔 댄스부와 밴드부를 오갔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홍대에서 활동했다. 재즈 밴드의 일원으로 지내다가 YG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그룹 투애니원(2NE1)의 ‘아파’를 쓰기도 했다. 일고여덟 살 쯤 가슴에 품었다는 ‘내 인생에서 음악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한시도 식지 않았던 모양이다.

[쿠키인터뷰] 선우정아, 수줍게 욕망하다선우정아는 오는 11월 말 정규 3집의 세 번째 파트 음반을 낼 계획이다. ‘쌤쌤’이 수록된 ‘스탠드’(Stand) 음반과 ‘투 제로’가 실린 ‘스터닝’(Stunning) 음반도 정규 3집 3부작의 시리즈였다. 파트1은 “칙칙함과 꼬인 마음”을, 파트2는 “가장 빛나는 아이(노래)들”을 모은 음반이었고, 마지막 파트는 “3집에 대한 소회”로 꾸릴 계획이다. 선우정아는 “따뜻하고 진중한 마음이 담긴 음반이라 딥 그린, 다크 그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음반 발매에 앞서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영동대로 코엑스 일대에서 열리는 ‘2019 서울국제뮤직페어’ 쇼케이스 공연에도 오른다. 그는 “자유로움을 분출하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수줍지만, 분출하는 아메바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선우정아에겐 ‘균형’과 ‘조화’가 중요한 화두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사이, 클래식과 트렌드의 사이, 본업에서의 강력함과 겸업에서의 열린 마음 사이에서의 균형과 조화다. 선우정아는 “나도 어설프고 겉절이 같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맛이 날 정도로는 숙성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면서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까, 뭘 해야 잘 어울릴까,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할까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롤모델을 말하는 건 항상 어려워요. 좋은 선배들은 항상 있을 텐데…. 이적 오빠를 예로 들어 설명할게요. 오빠는 음악과 목소리로 교체 불가한 존재가 됐잖아요. 하지만 예능에서의 모습은 무척 편하죠. 제작진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그런 열린 마음이 멋진 것 같아요. 유희열 오빠나, 장르는 다르지만 장윤주 선배님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아직 확실하지 인정받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두 가지를 확확 해낼 순 없지만…조금씩 외줄타기 하듯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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