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버티고’ 버티니까 청춘이란 철 지난 위로

‘버티고’ 버티니까 청춘이란 철 지난 위로

기사승인 2019-10-14 20:47:09
- + 인쇄

[쿡리뷰] ‘버티고’ 버티니까 청춘이란 철 지난 위로

불행으로 가득하다. 일과 연인, 가족 모두 등을 돌린 것만 같다. 현기증 나는 고층빌딩에서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어지러운 상황에 등장한 건 외벽에 로프로 매달린 남자. 그가 건네는 건 떨어질 것 같지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위로. 이 영화는 누구에게 어떤 위로를 전하고 싶은 걸까.

‘버티고’(감독 전계수)는 위태로운 30대 직장인 서영(천우희)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영화다. 직장에서는 다음 재계약을 보장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몰래 만나는 연인은 그의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 가족마저 그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영화 ‘삼거리극장’, ‘러브픽션’을 연출한 전계수 감독이 18년 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기억으로 쓴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영화다.

‘버티고’는 공감과 위로를 찾고 싶은 관객들을 위한 영화다. 서영이 겪는 불행과 고통은 영화 속에나 있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믿고 싶지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겐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질 보편적인 면이 있다. 문제는 영화가 위로를 주는 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는 서영의 선택과 그것을 바라보는 영화의 태도는 이전까지 끌어온 묵직한 주제에 비해 지나치게 얄팍하고 가볍다. 자신의 삶을 공감받는다고 느꼈던 관객에게 배신감과 허탈감을 줄 정도로 크게 엇나간다. 감독이 직접 작사했다는 ‘널빤지 위의 사랑’까지 들으면 대체 무엇을 말하는 영화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인물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도 문제다. 고민이 부족하다 못해 비윤리적으로 느껴진다. 서영이 겪는 여러 종류의 고통은 그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뭔가 잘못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원인이란 뉘앙스만 전할 뿐, 철저히 고립되고 고통받는 한 명의 개인을 그저 지켜만 본다. 마치 더 위태롭고 고통스러울수록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달된다는 것처럼.

서영의 불안한 상황을 로프에 매달려 외벽을 닦는 관우(정재광)의 현실에 대응하는 촌스러운 은유가 첫 번째 힌트, 18년 전 느낀 감정을 2019년에 풀어냈다는 영화의 배경이 두 번째 힌트다. 결말 전까지 서영의 상황에 몰입시키는 천우희의 충실한 연기가 아깝다. 16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