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헤이즈 “다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무뎌져요”

헤이즈 “다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무뎌져요”

기사승인 2019-10-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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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계절의 문턱을 넘어오던 지난 9월, 옛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리던 가수 헤이즈의 마음이 일렁였다. 새 미니음반 ‘만추’에 실릴 동명의 노래를 쓰던 때였다. 헤이즈는 몇 해 전 가을, 오래 만난 연인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 마음을 깊이 나눈 연인이었다. 그의 직감은 그래서 확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헤이즈를 덮친 건 배신감이 아니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데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어쩌면 그 이유를 자신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또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기까지 수많은 밤을 고민 속에 보냈을 거라고 헤이즈는 이해했다.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금이 시리도록 추운 한겨울이었다면, 혼자 집에 박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고요? 제가 생각했던 게 맞더라고요. 하하.” 최근 서울 성미산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헤이즈는 지난 이별담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추’의 가사를 썼다. 사랑을 단념하겠다는 노랫말은 아리지만, 리듬은 율동적이고 기타 연주는 청량하다. 헤이즈는 “예전부터 시티팝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이번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귀띔했다. 미리 정해뒀던 타이틀곡 ‘떨어지는 낙엽까지도’ 대신 ‘만추’를 타이틀곡으로 하자고 주장했지만, “회사 분들이 만장일치로 반대해서” 두 곡을 모두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별을 돌아보지만, ‘만추’를 쓸 때까지만 해도 헤이즈는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가이드곡을 녹음할 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울면서 부른 가이드곡의 후렴구를 정식 음원에 실었다. 아무리 노래를 불러봐도 그때만큼 감정이 잘 살지 않아서다. 작년 3월 낸 ‘바람’ 음반을 만들 때도 헤이즈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아있던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울고 힘들게 감정을 표현했던 음반”이라며 “그 뒤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쓰는 노래는 모두 제 경험담이에요. 멋이 없고 지질한 모습도 그대로 쓰죠. 제 이미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상관없는데, (연애)상대에겐 미안할 때도 많아요. 우리 둘만의 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거니까요. 게다가 남들은 이별 후의 아픔을 극복하려고 하는데, 저는 울면서도 그 이야기로 가사를 쓰고 있으니까… 가끔 ‘나 뭐지? 독하다.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싶기도 해요.”

[쿠키인터뷰] 헤이즈 “다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무뎌져요”그래도 헤이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을 미화하지도, 감정을 걸러내지도 않는다. 그는 “노래의 감정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내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라면서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면, 어느 정도 무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헤이즈는 “있는 그대로, 모든 걸 다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 아직도 자신에게 ‘노래를 직접 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내가 직접 곡을 쓴다는 사실을 좀 더 알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기획사에 소속돼 춤과 노래를 훈련받는 아이돌 가수나 교육 기관에서 실용음악을 익힌 대다수 싱어송라이터들과 달리, 헤이즈는 “음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대신 윤상, 이문세, 이적, 유희열 등의 음악을 듣고 자라며 감수성을 쌓았다. 주변 뮤지션에게 ‘음악을 배웠다면 이런 코드를 안 쓸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런 독특함이 오히려 헤이즈만의 색깔이 됐다. 헤이즈는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떠오를 때 가장 나다운 음악이 나온다”고 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저 별’, ‘널 너무 모르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등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듣는 분들의 반응도 자주 살피고 영향도 많이 받죠. 사실 최근 몇 년간 삶에 변화가 없어서 ‘영감이 고갈되는 날이 오면 너무 큰 슬럼프에 빠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하긴 해요. 하지만 지금은 노래를 만드는 게 가장 재밌고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간 지금을 그리워할 때가 오겠죠. 그래서 더 즐겁게 하려고요. 더욱 행복하게.”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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