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자이언티 “저를 잊지만 않으신다면…”

자이언티 “저를 잊지만 않으신다면…”

기사승인 2019-11-08 07:00:00
- + 인쇄

남자와 여자는 5월 어느 밤에 만났다. 둘은 잘 웃지 않았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래도 둘은 사랑에 빠졌다. 연애를 했고, 권태를 느꼈으며, 결국 관계를 끝냈다. 여자가 이별을 말하던 날, 남자는 여자를 붙잡을 수 없었다.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사랑은 쉽게 찾아오지 않아요. 그렇게 쉽게 얘기하면 안 돼요.” 싱어송라이터 자이언티가 6일 낸 신곡 ‘5월의 밤’의 가사 내용이다.

자이언티는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 곡 가사를 썼다. 하지만 노래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단다. 그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로 연을 맺은 스타 작사가 김이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 작사가를 처음 만난 날, 자이언티는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살이 빠져 앙상해진 손가락 주위로 반지가 자꾸 헛돌았기 때문이었다. 김 작사가는 그 모습을 ‘흔들리는 연인’에 비유했다. 둘의 작업은 그렇게 탄력을 받았다.

“사랑은 쉽게 다가오지 않으니,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5월의 밤’ 발매를 앞두고 서울 토정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자이언티는 “어렸을 땐 쉽게 누군가를 만나고 쉽게 해어졌다. 그렇게 (사랑을) 잃고 또 잃다 보니 그게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자이언티의 개성이 강하게 묻어났던 전작들과 달리, ‘5월의 밤’은 전형적인 발라드에 가깝다. 하지만 자이언티는 노래 안에 진심을 담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 곡에 어떻게 공감하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자이언티는 2010년대를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5월의 밤’을 냈다고 했다. 그에게 지난 10년은 각별한 시간이었다. 자이언티는 2011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노래를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다. 2014년 낸 ‘양화대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뒤, ‘꺼내 먹어요’ ‘노 메이크업’(No make up), ‘노래’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그는 “그간 좋은 일을 포함해 여러 경험을 해봤다”며 “2020년이 오기 전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자이언티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대중이 받아들이는 이미지, 분명 다르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걸 구분해서 생각하진 않아요. 대중이 원하는 게 제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해냈을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할 거란 확신도 있죠.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뭘 하더라도 완성도 있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에요.”

[쿠키인터뷰] 자이언티 “저를 잊지만 않으신다면…”이 뻔한 노래로 한 시대를 마무리하겠다는 자이언티의 계획은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겠다는 포부가 읽혀서다. 실제로 자이언티는 내년을 얘기하면서 “새로운 시도”나 “도전” 같은 단어를 여러 번 흘렸다. ‘5월의 밤’을 “분기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자이언티는 타고난 모험가다. 익숙한 작법을 순위를 높이는 원동력으로 생각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실험적인 음악에 더 많은 기대를 건다. ‘이런 노래가 잘된다면 진짜 멋질 텐데!’라는 생각에서다.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 그의 마음을 끄는 이는 싱어송라이터 수민이다. 사석에서도 가끔 만나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소속사 식구인 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가수 전소미와도 많은 교감을 나눈다. 이런 모든 시도는 “데이터”가 된다. 자이언티는 “나는 솔로 아티스트를 브랜딩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래서 나와 내 팀에겐 데이터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라면처럼 심심한 노래를 냈다가, 10명 중 1명만 좋아할 법한, 향신료를 마구 뿌린 노래를 내기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데이터를 얻고 싶다”고 했다.

자이언티는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자신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여전히 신기하지만, 그런 사람이 더 늘어날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엔 “(나를) 까먹지만 않아 주신다면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래도 그는 “이 업계가 질릴 듯 말 듯 좋다”고 했다. 혼자서는 시대의 흐름을 만들 수도, 예측할 수도 없기에 여러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자이언티. 일견 ‘괴짜’ 같기도, 성실한 ‘소리 노동자’ 같기도 했다.

“저를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다니시는 분들, 정말 용기 있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외모도 마니악한데, 하필 여기에 꽂히셔서….(웃음) 2010년대를 돌아보면, 제 캐릭터가 코믹해 아무리 진지한 척을 해도 조롱이 나오는 시절도 있었어요. 당시의 제 진지한 시도들이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 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단 그때까지 제가 잘살아야겠죠, 나쁜 짓 안 하고. 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