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은 정부가 육성, ‘외국인 먹튀’는 병원이 책임

예치금 등 리스크 방지 방안 의무 아냐…미수금 발생하면 손실처리

기사승인 2019-11-14 05:30:00
- + 인쇄

병원 “돈 안 낸다고 진료 중단할 수 없어”

진흥원 “환자 억류시 인권문제 발생…연4회 이상 관련 교육 진행”

 

의료관광은 정부가 육성, ‘외국인 먹튀’는 병원이 책임

 

“돈 없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고 야반도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돈 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으니 그냥 손실처리 하는 거죠.”

전 세계적으로 의료 관광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정부도 산업 발전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 수가 매년 늘고 있는 가운데 진료비를 내지 않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먹튀’ 환자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수금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미비해 의료기관은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외국인환자 유치사업 등록 국내 의료기관은 1958개소다. 작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환자는 37만8967명으로 전년대비 17.8% 증가했다. 진료유형으로 보면 입원환자는 2만7879명, 외래 35만1088명으로 집계됐다.

의료기관의 외국인환자 유치는 보통 해외 의료기관이나 에이전시로부터 환자를 소개받아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은 환자의 건강상태 확인 및 진료와 진료비 정보 등을 제공하고, 예약이 확정되면 의료관광비자를 발급한다. 짧은 기간 한국에 머무는 유치 환자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국인에 비해 높은 진료비가 발생하게 되지만, 상담 과정에서 예상진료비를 고지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지급 가능 범위에서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수술 후 회복 등으로 인해 의료기관에 머무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거나 응급상황 발생으로 진료비가 예상 범위를 크게 넘었을 때다. 수천만원 이상의 고액의 진료비가 쌓이면 지급능력 상실을 이유로 이를 내지 않거나 야밤에 몰래 병실을 빠져나가는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인천에 있는 A 대학병원의 국제진료협력센터 관계자는 “신뢰성이 확보된 에이전시를 통해 환자를 유치하기 때문에 미수금 발생률은 낮은 편이다. 돈 한 푼 없이 병원을 오는 경우도 없다”며 “하지만 의료라는 분야가 예측이 불가능하고, 중증환자의 경우 입원 기간에 변수가 있어 진료비가 예상보다 초과될 수 있다. 최대한 (진료비를) 받기 위해 중간계산을 하지만, 끝까지 안 내도 병원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진료를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수금 문제 때문에 과거에는 예치금을 받기도 했었고, 또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진료비를 결제하려는 경우를 예의 주시하기도 했다. 요즘은 환자 유치를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손실분은 병원 내 사회복지기금으로 충당하거나 손실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있는 B 대학병원은 미수금 발생 및 불법체류 방지를 위해 진료 예약 과정에서 예치금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병원 관계자는 “내국인과 달리 유치 환자는 ‘호텔 이용객’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보증인이 없기 때문에 진료비 일부를 미리 받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남은 진료비를 못 내겠다고 하면 그냥 감면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의료 윤리’를 이유로 예치금을 받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C 대학병원 관계자는 “예치금을 안 낸다고, 못 낸다고 해서 진료를 받지 않는 것은 윤리에 맞지 않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암 등 생명과 관련된 질환을 가진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선 진료를 시행하고, 중간계산을 통해 미수금 발생 위험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며 “병원 직원들은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사회공헌기금을 연계하는 등 방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병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들이 야반도주를 하는 경우도 있고, 수천만원의 미수금을 손실로 처리한다고 하더라. 에이전시를 통해 받은 환자라고 하더라도 에이전시가 미수금까지 받아주진 않는다”며 “소송을 걸기도 쉽지 않아 사실상 못 받는다고 보면 된다. 의도적으로 진료만 받고 가는 경우는 없으리라 보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다. 계속 환자와 접촉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예치금이나 중간계산 등을 통해 병원의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무사항이 아니고, 별다른 제도적 장치도 없어 손해 발생에 대한 책임은 병원만 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이같은 문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교육’만 진행할 뿐이다.

보건산업진흥원 외국인환자유치단 관계자는 “리스크 방지를 위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보험 상품을 개발하려고 했으나 현실화되진 않았다. 현재로서는 연 4회 이상 유치 기관 대상 설명회를 개최해 이러한 사례를 공유하고 예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법률상으로는 외국인의 진료비 미지급에 대해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히려 진료비를 안 낸 환자를 억류했을 때 인권, 국제법상 문제가 발생한다”며 “예상진료비를 보다 명확하게 산출해 정보를 제공하고, 일부 금액을 할인하는 등 여러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치금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외국인환자의 경우 비자문제, 불법체류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예치금을 받을 수 있고, 병원 방침에 따라 이를 내지 않을 시 진료예약을 받지 않아도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 내국인에 대한 진료 거부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손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현지 보험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환자사례집도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있다. 비자나 진료비, 의료사고 문제에 대해서는 메디컬코리아 지원센터를 통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