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버리면 ‘동료’” 장애인 고용, 차별의 벽을 넘어

기사승인 2020-01-03 0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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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 소설가는 직업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대의 직업은 늘 가슴 뛰고, 하면 할수록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직업, 노동의 의미는 장애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위탁업체의 돈벌이로 흘러가는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장애인 채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방향성과 모범 사례 등을 함께 제시하려 합니다. 장애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함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학생들과 함께 꿈꾸고 노력하면 기분 좋아져요. 저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대안학교 ‘다다예술원’에서 만난 오유진(36)씨는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오씨는 자폐 장애인이다. 인터뷰 중간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노 앞에 앉자 180도 달라졌다. 클래식은 물론 대중가요 ‘아모르파티’까지 막힘없이 연주했다. 오씨는 이곳에서 학생에게 피아노·드럼을 가르치는 음악교사다.

다다예술원에는 오씨를 포함, 장애를 가진 4명의 교사가 근무한다. 장애 교사들은 음악, 수학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학생에게 나누고 있다. 보통 자폐를 가진 장애인 일자리는 단순노동으로 한정돼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환경미화, 부품 조립 등의 일자리를 얻는 것에 그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근로지원인’ 제도는 한정된 장애인 일자리의 벽을 허물었다. 자폐 장애를 가진 교사는 학생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다다예술원에 파견된 근로지원인은 학생과 장애 교사의 의사소통을 돕고, 돌발행동을 막는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근로지원인은 지난해 11월 기준, 3893명. 이들은 핵심적 업무수행능력을 가진 중증장애인을 도와 부수적인 업무수행을 대행한다. 출장 및 업무 시 장애인의 이동을 지원하거나 서류 대독·정보 검색 등의 일도 맡는다. 

이은희 다다예술학교 교장은 “근로지원인이 없었다면 장애를 가진 선생님들을 채용, 관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공학기기도 장애인의 근로 활동을 돕는다. 같은 달 기준, 5824명의 장애인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보조공학기기를 지원받아 근로하고 있다. 하반신이 불편한 지체 장애인을 설 수 있게 하는 ‘기립형 특수 작업 의자’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단말기’, 음성을 문자로 변환시키는 ‘보안대체의사소통장치’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진의 의지가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곳도 있다. 청주 오창산업단지에 위치한 에코프로는 지난 2018년 11월 장애인 체육 선수를 직접 선발, 채용했다. 육상, 역도, 펜싱, 당구, 사격, 볼링 등 총 23명의 체육 선수들이 에코프로의 유니폼을 입고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체육 선수들에게는 에코프로 사원과 같은 복지가 제공된다. 

초기에는 회사 내부 반발도 컸다. 장애인 체육선수단을 운영하는 것보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이 손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이익을 얻으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경영진 등은 한 달에 한 번씩 장애인 체육 선수들의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의 상태를 살폈다. 어떤 부분에 지원이 필요한지도 꼼꼼히 챙겼다. 박훈 충청북도장애인체육회 역도팀 감독은 “사장님이 직접 와서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이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기다리는 취업 대기자가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선수들 만족도는 매우 높다. 급여를 받고 보다 안정적으로 체육 활동에 매진한다. 에코프로 역도팀 소속 이지연씨의 경우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벤치프레스, 웨이트리프팅, 종합 3종목에서 모두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같은 팀 소속 안영훈(56)씨는 “취업하기 전에는 혼자 훈련을 하고 지도를 받았지만 이제는 소속된 팀이 있어 다르다”며 “장애를 갖게 된 지 29년이 됐는데 최근 ‘살아있다’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됐다.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스웨덴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장애인에게 특화된 고용 시장 형성에 나선다. 스웨덴의 정부 출자 100% 기업인 ‘삼할’(SAMHALL)이 모범 사례다. 삼할은 장애인 고용을 위한 직업훈련 기관이다. 장애인 2만3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함으로써 삼할에서 근로하는 장애인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삼할의 운영 목표는 장애인 근로자들이 향후 일반 노동시장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제조업, 창고업, 물류업, 자산서비스, 관리서비스, 소매업 등 24개 직업군에 대한 직업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받은 매년 1000여명의 장애인들이 다른 작업장이나 일반 회사로 이동한다.

“편견 버리면 ‘동료’” 장애인 고용, 차별의 벽을 넘어
삼할은 경제 동향에 기민하게 반응해왔다. 시대 흐름에 발맞춰 사업 영역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1980년대에는 1차 산업, 1990년대는 장거리 통신과 서비스 산업에 주력하다 현재는 고령화에 따른 신서비스사업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장애인 사업장을 대부분 1차 산업으로 분야를 한정 짓는 한국과 다르다. 

장애인의 특성을 살리는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디스커버링 핸즈’(Discovering Hands)는 독일의 사회적 기업이다. 산부인과 의사 프랑크 호프만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촉각이 뛰어난 시각장애인 여성이 유방암 검사를 하는 직종이다. 또 유럽에서는 자폐성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수인지능력, 집중력이 탁월하다는 점에 착안, IT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 수행하는 업무는 소프트웨어 테스트, 품질관리, 그래픽 디자인, 보안 등의 업무다.

박경수 한양대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4차 산업 등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발굴해야 한다”면서 “장애인을 새로 고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취업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개선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중소기업보다 낮은 실정”이라면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사업장에서만 의무화돼있는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아동, 청소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기자 mi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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