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종잇조각 판결문?'…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 처벌 어렵나

'고작 종잇조각 판결문?'…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 처벌 어렵나

기사승인 2020-01-16 0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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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까지는 명의 이전 등 법의 허점을 악용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더라도 명확한 처벌이 어렵다. 

14일 수원지법 대법정에서는 약속됐던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부모들의 호소가 터져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창열)는 이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본창(55)씨 등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다. 구씨는 온라인 사이트 ‘배드파더스’에 양육비 미지급자 5명의 사진과 이름, 직장 등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구씨 측 증인으로 참석한 손모씨는 “매월 60만원씩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단 한 번도 지급받은 적 없다”면서 “상대방에게 반성이나 양육비를 지급하겠다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이 데리고 와서 무릎 꿇고 구걸하면 생각해보겠다. 이깟 종이(판결문)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눈물을 보였다. 그는 “전남편의 명의로 된 상가와 아파트, 빌라 등이 있었으나 이혼 소송 중 모두 타인의 명의로 돌려놨다”며 “전 남편은 BMW를 타고 다니며 현재도 SNS에 골프를 즐기는 사진을 올린다. 불우이웃을 도왔다는 기사가 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손씨의 전남편은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후, 지난해 6월부터 매달 10만원씩을 양육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대표도 법정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단했던 삶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필요한 것을 충분히 주지 못했다”며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교육비를 감당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편이 양육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연락 자체를 두절했다”며 “아이에게도 ‘아들로 생각한 적 없다. 연락하지 마라’고 상처를 줬다”고 이야기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약 18년 동안 양육비 2억4000만원을 전남편으로부터 지급받지 못했다. 이 대표의 전남편 또한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게재된 후에야 양육비를 조금씩 지급하고 있다. 

손씨와 이 대표처럼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것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한부모가정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8%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번도 받은 적 없다’ 73.1%, ‘과거에는 받았으나 현재 받지 못하고 있다’ 5.7%였다. 

양육비 지급을 미이행할 시 가장 큰 처벌은 ‘감치’다. 일정 기간 경찰서 유치장 등에 가두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양육비 미지급자가 잠적하거나 위장전입 등으로 6개월간 감치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기존 감치명령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었으나 지난해 연장됐다. 감치됐다 하더라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받아낼 도리가 없다. 

'고작 종잇조각 판결문?'…양육비 안 주는 부모들, 처벌 어렵나한부모들은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상대방의 주거지, 직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홍모(46)씨는 지난해 8월부터 같은해 10월까지 전남편의 거주지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홍씨에 따르면 그의 전남편은 위자료와 양육비 등 8000만원을 홍씨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홍씨는 “아이가 몸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병원비만이라도 달라고 요구하니 전남편은 ‘너는 돈 벌어서 뭐했느냐. 왜 나한테 달라고 하느냐’고 이야기했다”며 “혼자 열심히 벌어도 한계가 있다. 아이는 아빠가 돈을 주지 않는 것을 알고 등록금 부담에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한부모가정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현재까지 약 400여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신상 공개 후 양육비를 보내기 시작했다. 113건의 양육비 문제가 배드파더스를 통해 해결됐다. 법원은 배드파더스의 자원활동가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드파더스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은 “사적인 복수를 할 경우 법치주의가 흔들린다”고 우려를 표했다.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법안은 현재 마련돼 있지 않다. 20대 국회에서 양육비 이행과 관련해 10개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양해연과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등에서 해당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으나 요원한 상황이다. 

해외는 다르다. 미국은 양육비 미지급자를 아동학대 혐의로 형사 처벌한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후, 양육비 미지급자로부터 회수하는 대지급제를 시행 중이다. 호주에서는 양육비를 임금에서 자동 차감한다. 이외에도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취소하거나 여권 발급을 불허하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hj19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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